[책마을] 경영학 창시자가 그림으로 읽은 일본ㆍ일본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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붓의 노래 - 일본화로 본 일본 ㅣ 피터 드러커 지음 ㅣ 이재규 옮김 ㅣ 21세기북스 ㅣ 256쪽 ㅣ 1만5000원
피터 드러커는 단순한 경영학자가 아니었다. 그가 두 권의 소설책을 낸 문학가이고 일본 미술이론서를 낸 동양미술 애호가이기도 했다는 사실은 잘 알려지지 않았다. 지난 8일 타계한 '드러커 전도사' 이재규 전 대구대 총장의 마지막 번역서 《붓의 노래》는 그래서 우리의 호기심을 끌기에 충분하다.
드러커가 이 책을 집필한 의도는 일본 미술 자체에 있다기보다 현재의 일본 문화와 일본적 현상의 전형이 이미 일본 전통회화 미학 속에 예시됐다는 점을 확인시키기 위한 것이었다고 할 수 있다. 저자는 그런 속내를 책의 서두에서부터 숨기지 않고 드러낸다. 그는 지에 나카네의 명저 《일본사회》의 내용을 근거로 "일본은 사회 부문 간에 이익 충돌이 일어나면 더 큰 공동체의 경제적 영광을 위해 합의점을 찾는 나라"라고 전제한 뒤 일본의 개인은 조직의 목적과 일치를 이뤄야 한다는 압력과 독립적 개성을 발휘해 일을 처리해야 한다는 압박감 사이의 긴장에 시달리는데,이것이 일본 문화를 특징짓는 양극성을 잘 보여주며 이러한 팽팽한 긴장감이 일본 근대 산업 발전의 원동력이 됐다고 분석했다.
그러나 이런 일본 사회의 특성을 일본 회화와 연결시켜 해석하려 한 시도는 수긍할 만하지만 다소 무리가 있어 보인다. 일본 그림을 포함한 동양의 그림은 서양처럼 창작의 결과물에 그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인격적 완성을 이루는 하나의 수양 과정이라는 점에 무게를 뒀다는 점을 드러커는 간과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일본 그림의 구도와 공간성을 주요한 분석 대상으로 삼은 드러커의 시도는 일본 회화의 외형적 이해에 그칠 소지가 크다.
또한 일본 그림에 대한 편애가 동양회화 전반의 당치 않은 왜곡으로 이어져 불편하다. 일본의 양극성 공존을 중국의 음양론과 다르다고 주장한 점,여백을 일본 회화만의 고유한 특징이라고 본 점,중국 회화를 '대수학적'이고 일본 회화를 '위상수학적'이라고 주장한 점이 대표적이다.
그런 가운데서도 에드윈 라이샤워의 견해를 빌리긴 했지만 일본인을 '개념적'이기보다 '지각적'이라고 본 점은 정곡을 찌르는 견해다. 그림에 대한 해석에는 무리가 있지만 일본인과 일본 사회의 특질에 대해 성찰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준다.
정석범 문화전문기자 sukbumj@hankyung.com
드러커가 이 책을 집필한 의도는 일본 미술 자체에 있다기보다 현재의 일본 문화와 일본적 현상의 전형이 이미 일본 전통회화 미학 속에 예시됐다는 점을 확인시키기 위한 것이었다고 할 수 있다. 저자는 그런 속내를 책의 서두에서부터 숨기지 않고 드러낸다. 그는 지에 나카네의 명저 《일본사회》의 내용을 근거로 "일본은 사회 부문 간에 이익 충돌이 일어나면 더 큰 공동체의 경제적 영광을 위해 합의점을 찾는 나라"라고 전제한 뒤 일본의 개인은 조직의 목적과 일치를 이뤄야 한다는 압력과 독립적 개성을 발휘해 일을 처리해야 한다는 압박감 사이의 긴장에 시달리는데,이것이 일본 문화를 특징짓는 양극성을 잘 보여주며 이러한 팽팽한 긴장감이 일본 근대 산업 발전의 원동력이 됐다고 분석했다.
그러나 이런 일본 사회의 특성을 일본 회화와 연결시켜 해석하려 한 시도는 수긍할 만하지만 다소 무리가 있어 보인다. 일본 그림을 포함한 동양의 그림은 서양처럼 창작의 결과물에 그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인격적 완성을 이루는 하나의 수양 과정이라는 점에 무게를 뒀다는 점을 드러커는 간과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일본 그림의 구도와 공간성을 주요한 분석 대상으로 삼은 드러커의 시도는 일본 회화의 외형적 이해에 그칠 소지가 크다.
또한 일본 그림에 대한 편애가 동양회화 전반의 당치 않은 왜곡으로 이어져 불편하다. 일본의 양극성 공존을 중국의 음양론과 다르다고 주장한 점,여백을 일본 회화만의 고유한 특징이라고 본 점,중국 회화를 '대수학적'이고 일본 회화를 '위상수학적'이라고 주장한 점이 대표적이다.
그런 가운데서도 에드윈 라이샤워의 견해를 빌리긴 했지만 일본인을 '개념적'이기보다 '지각적'이라고 본 점은 정곡을 찌르는 견해다. 그림에 대한 해석에는 무리가 있지만 일본인과 일본 사회의 특질에 대해 성찰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준다.
정석범 문화전문기자 sukbum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