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전, 서브원과 해약 후 구매 비용 10% 늘어
한국전력은 지난 6월 LG그룹의 소모성자재구매대행(MRO)업체인 서브원과의 계약을 중도해지했다. 계약 만료까지는 10개월 남았지만 정치권과 정부 안에서 대기업 일감몰아주기 논란이 일자 서둘러 이 같은 결정을 내렸다. 자회사인 남부발전과 동서발전도 한전의 결정에 동참했다. 강원랜드와 전자통신연구원 철도기술연구원 등 10여개 기관들도 뒤를 이었다. 이들 기관은 이후 업무에 필요한 소모성 물품을 어떻게 조달하고 있을까.

◆조달비용 증가

한전은 서브원과 계약을 해지한 후 사업소별로 중소기업 제품을 자체적으로 구매하도록 했다. 한두 군데 중소MRO업체에 전체 조달을 맡기는 것은 위험이 크다는 판단에 따른 결정이었다.

사업소별로 구매를 하다보니 조달비용도 증가할 수밖에 없었다. 한전 관계자는 "중소기업들과 품목별로 계약하려다보니 비용이 10% 이상 올라가고 관리비 등 간접비용도 새로 생겨났다"고 말했다. 중소업체 지원이라는 '대의명분'을 따르다보니 경영상 비효율은 감수할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그나마 문구류 화장지와 같은 소모품은 제때 공급되지 않거나 금액이 다소 비싸더라도 어느 정도는 감수할 수 있지만 베어링 등 발전설비 유지보수에 필요한 품목은 얘기가 달라진다. 한전 관계자는 "유지보수 품목은 절대로 공급이 지체되거나 차질이 생겨서는 안 된다"며 "품목별 거래는 아무래도 불안하다"고 말했다.

◆쪼개고,나누고…옛날 방식 복귀

지난 6월 서브원과 계약을 중도 해지한 강원랜드는 현재 입찰공고문을 만들고 있다. 150여개 MRO품목을 주방 전산 등 4개 품목군으로 나눠 폐광지역에 있는 중소기업에 나눠주겠다는 것이다. 서브원과 거래하기 이전 상태로 원상 복귀하는 셈이다.

한 공기업 관계자는 "대기업MRO와 거래하면서 6%가량 비용절감 효과를 얻어 경영혁신상까지 받았다"며 "정부 방침이 바뀌면서 다시 옛날방식으로 돌아가야 할 판"이라고 말했다.

지난 6월 대기업MRO 업체와 계약을 해지한 10여개 공공기관들은 이처럼 조달물품을 항목별로 '쪼개거나' 단위 사업장별로 '알아서' 조달하고 있다. 중소MRO업체와 일괄조달 계약을 맺은 곳은 단 한곳도 없었다. 한 공공기관에서 조달업무를 담당하는 직원은 "비용절감에 대한 확신이나 조달 시스템에 대한 신뢰가 없는 상태에서 선뜻 중소MRO업체와 계약을 하기가 어렵다"고 말했다.

◆조달청까지 거쳐야

정부는 한발 더 나아가 내년부터 모든 공공기관의 MRO 계약은 반드시 조달청을 거치도록 할 방침이다.

기획재정부는 조달사업법 시행령을 바꿔 정부 부처와 지방자치단체 외에 공공기관도 반드시 조달청을 통해 소모성 물품을 공급받도록 의무화할 방침이다. 지금까지 공공기관은 자율적으로 MRO업체를 지정할 수 있었다.

정부는 그동안 대기업 MRO업체가 시장을 독식해온 문제점을 해소하기 위한 조치라는 설명이지만 업계에서는 공공기관이 대기업 MRO업체와 거래를 유지할 경우 동반성장을 강조해온 정부의 방침이 무력화된다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보고 있다. 그동안 비용절감을 위해 대기업과 MRO 계약을 맺어온 공공기관들은 벌써부터 우려하고 있다. 조달청이 외주를 주는 중소MRO업체로 거래를 제한할 경우 서비스 질은 떨어지면서 납품 단가가 올라갈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서보미/이심기 기자 bmse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