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금융위기라는 말보다 재정위기라는 말을 쓰도록 하자."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 10일 과천 정부청사에서 비상대책회의를 소집한 자리에서 한 이 말을 놓고 기획재정부 내에서 해석이 분분하다.

대체적인 분위기는 '내년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정치권의 무분별한 선심성 예산증액 요구를 받아칠 명분이 생겼다'는 것이다. 재정부 고위 관계자는 "(정치권과의 협상에서)확실하게 힘이 될 것 같다"고 말했다. 또 다른 재정부 간부도 "이 대통령이 예정에 없이 정부 청사를 찾아 '10년 후 대한민국에 나타날 모습을 보면서 소명의식을 가져야 한다'며 재정부 역할을 강조했다"고 지적했다. 내년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표심을 잡기 위한 정치권의 반값 등록금,무상급식,무상보육,저축은행 피해자 보상 요구에 적극적으로 대처하라는 지시라는 해석이다.

반면 일부에선 '재정위기라는 용어가 부각될 경우 오히려 재정부 입장이 난처해질 수도 있다'는 신중론도 만만치 않다. 재정부의 한 국장급 간부는 "재정건전성 논쟁이 여당의 '복지 포퓰리즘 반대'와 야당의 '감세 철회'라는 정치적 논쟁으로 부각될 경우 중간에서 재정부만 곤혹스러운 상황에 빠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재정위기라는 단어를 지나치게 강조하다 보면 우방국인 미국을 자극하는 꼴밖에 더 나겠느냐며 실익이 없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재정부의 한 관계자는 "대통령의 말 한마디에 기대 힘을 얻거나 정치적으로 활용할 생각은 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이심기 기자 sg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