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업계 "추가 주문 끊긴 것과 다름없어" 충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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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금융시장 '카오스' - D램값 20% 폭락…산업현장 '위기경영'
현대차, 서플라이체인 긴급 점검…LG, LCD 신규투자 속도조절 검토
현대차, 서플라이체인 긴급 점검…LG, LCD 신규투자 속도조절 검토
주력 수출품목인 D램 반도체 값이 11일 20% 가까이 폭락하는 등 글로벌 금융위기의 후폭풍이 산업계로 밀려들고 있다. 시장 주력제품인 DDR3 1Gb D램의 8월 상반기 고정거래가격은 이날 0.61달러를 기록,생산원가의 절반 수준에 머물렀다. 반도체 가격 급락은 금융위기 여파로 소비심리가 위축되고 실물 경기가 좋지 않을 것임을 예고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반도체 업계 고위 관계자는 "아예 주문이 끊긴 것과 마찬가지"라는 말까지 했다.
◆반도체 값 폭락
올해 들어 D램 값은 지난 3월 1달러대를 잠깐 회복한 후 곧바로 1달러 밑으로 하락했다. D램을 많이 쓰는 PC수요가 전 세계적으로 부진할 것이란 예측 탓이다. 여기에 지난주부터 글로벌 금융위기가 확산되면서 하반기부터 정보기술(IT)기기 수요가 예상치를 밑돌 것이란 우려가 나왔다. 업계 관계자는 "미국 유럽 등 선진 시장의 경기침체로 PC에 이어 TV 수요도 줄어들 것"이라며 "D램 값 반등은 내년 상반기에나 가능할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고 말했다.
이건희 삼성 회장이 이날 반도체 LCD(액정표시장치) LED(발광다이오드) 등 주력 부품사업을 맡고 있는 전자 계열사 사장단을 불러 사업 전반을 점검하고 대응방안을 마련하라고 지시한 것도 반도체 값 급락을 시작으로 실물경기 침체가 확산될 것이라는 판단과 무관치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분기마다 2조원 가까운 영업이익을 내고 있는 반도체 사업이 흔들리면 삼성전자의 사업계획 전반에 대한 수정이 불가피해진다.
대기업 주력제품의 수출 가격 하락에 이어 조만간 물량감소도 불가피할 전망이다. 뿐만 아니다. 수요감소로 인한 재고증가,엔고(高)에 따른 일본 부품수입 부담 증가 등 악재들이 잇따르고 있다. 전국경제인연합회가 주요 그룹 기획담당 임원을 대상으로 글로벌 금융위기의 여파에 대해 설문 조사한 결과 상당수 기업들이 "실물경제도 심각한 영향을 받을 것"이라고 답했다.
미국의 더블딥 전망이 증폭되고 있는 가운데 남유럽의 재정위기가 프랑스까지 확산될 조짐을 보이면서 전 세계적인 불황의 우려를 낳고 있다. 한 대기업 임원은 "이번 재정위기는 2008년의 리먼브러더스 파산에 촉발된 금융위기와 성격이 다르다"며 "주요 국가가 재정지출을 억제함에 따라 전 세계적으로 수요감소와 성장률 저하가 장기간 지속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내년 총선 · 대선을 앞두고 정책의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는 점도 대기업의 경영전략을 안갯속으로 몰아넣고 있다. 김종석 홍익대 경영학과 교수는 "글로벌 경기침체와 맞물려 시장경제 원칙을 훼손하는 정치권의 포퓰리즘 정책 입안이 쏟아지고 있어 기업 경영환경이 그 어느 때보다 힘들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대기업 사업계획 전면 재검토
포스코는 하반기 투자와 신사업 전략 등 사업계획을 재검토하기 시작했다. 회사 관계자는 "연초에 수립한 7조3000억원 투자가 현 시점에서 볼 때 적당한지를 따져볼 계획"이라며 "당장 급하지 않은 투자 건은 속도를 다소 늦추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포스코는 2008년 금융위기 이후 3년여 만에 정준양 회장이 주재하는 '비상경영대책회의'를 가동했다.
현대 · 기아자동차는 해외 자동차 판매가 둔화될 것에 대비해 서플라이 체인(부품공급망) 전반을 긴급 점검하고 나섰다. 현대 · 기아차의 글로벌 판매 재고수준은 역대 가장 짧은 1.7개월이지만 소비심리 위축에 신용경색이 덮칠 경우 재고증가가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삼성과 LG는 당장 사업계획을 재편하지는 않을 방침이지만 업황이 나쁜 LCD사업은 투자속도를 늦추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반도체는 업황에 따라 투자를 더 늘릴 수 있지만 LCD분야는 업황이 나빠 투자를 늘리기 어렵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LG디스플레이는 중국의 8세대 LCD패널 생산라인 건설 계획 등을 늦출 것으로 알려졌다. SK그룹 관계자는 "1~2개월 단위의 경영계획을 세워 자금운영과 투자를 점검하고 있다"고 전했다.
김기찬 가톨릭대 경영학과 교수는 "대기업의 해외사업 포트폴리오가 잘 나눠져 위험이 분산돼 있다"면서도 "유럽과 미국에서 동시다발적인 경제위기가 닥치고 있는 만큼 본격적인 위기경영에 나서야 할 때"라고 지적했다.
이태명/장진모/장창민/김동욱 기자 cmj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