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재한 정책금융공사 사장(사진)이 11일 하이닉스반도체 매각 과정에 불거진 루머에 대한 해명과 함께 '매각 가이드라인'을 내놨다. '개인적 의견'이란 전제조건을 달았지만 하이닉스 매각을 주도하는 주요 채권기관장(長)의 발언이어서 다음주 중 나올 채권단 차원의 '매각 룰'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구주(채권단 보유지분)와 신주 발행비율,외국자본 참여제한 등을 놓고 한동안 삐걱거렸던 하이닉스 매각작업이 제 속도를 낼지 주목된다.

◆구주 매각 가점 없다

유 사장은 이날 서울 여의도 정책금융공사에서 긴급 기자간담회를 열어 하이닉스 매각과 관련한 다섯 가지 기본 원칙을 제시했다.

먼저 '구주 매각 가점 부여' 논란에 대한 입장을 밝혔다. 시장에선 그동안 '채권단이 구주를 많이 인수하는 기업에 가산점을 주기로 했다' '신주 발행을 아예 고려하고 있지 않다'는 루머가 많았다.

SK텔레콤과 STX그룹은 루머가 확산되자 "채권단이 구주인수에 가점을 주는 룰을 추진한다면 입찰에 참여하지 않겠다"고 강력 반발했다. 이에 대해 유 사장은 "구주 인수에 가점을 줄 계획이 없다"고 말했다.

그는 "경영권 프리미엄을 많이 제시한 기업이 인수하도록 한다는 원칙에 변함이 없다"며 "구주를 많이 사는 쪽이 적어도 불리하지 않도록 공정하게 평가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구주 최소 7.5% 이상 매각,신주 발행 최대 10%까지 허용'이란 기존 입장도 재확인했다. 그는 "구주매각과 신주발행을 병행해 20% 내외의 지분을 인수해야 한다는 건 채권단 공식 입장은 아니지만 일종의 가이드라인"이라며 "채권단 내에서 구체적인 기준을 내놓지 못하고 있지만 정책금융공사 입장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채권단이 기술 유출을 우려해 외국자본 참여비율을 25%로 제한할 것'이란 소문에도 입을 열었다. 유 사장은 "기술 유출을 막기 위해선 한국 기업이 경영권을 가져야 한다"며 "외국인 재무적투자자(FI)는 49%까지만 허용해야 한다는 게 내 생각"이라고 설명했다. "국내외를 불문하고 FI 비중이 높으면 감점을 줄 것"이라고도 했다. '글로벌 금융위기로 하이닉스 주가가 하락하면서 지분매각 일정이 늦춰질 수 있다'는 시각에 대해선 "증시가 패닉 상태까지 간다면 모를까 하이닉스 주가 변동과 관계없이 매각작업은 일정대로 진행하겠다"고 강조했다.

◆SKT "달라진 것 없다" 반발

유 사장 발언에 대해 SKT와 STX는 묘한 입장 차이를 보였다. SKT는 "구주에 프리미엄을 주겠다는 것은 가산점을 주겠다는 것이나 다를 바가 없다"고 반발했다. SKT 관계자는 "채권단으로부터 매각방식에 대한 구체적인 안을 받지 못했다"면서도 "유 사장 얘기를 들어보면 전과 크게 달라지는 것은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STX그룹 관계자는 "기존 채권단의 입장을 재차 확인한 것 아니냐"면서도 "시중의 근거없는 루머를 불식시키는 효과는 볼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시장에선 채권단이 구주 매각을 우선 추진하려는 움직임에 SKT와 STX가 강력 반발하자 유 사장이 무마에 나선 것으로 보고 있다. '구주 7.5% 이상 매각,신주 최대 10% 발행'이란 기준을 재차 확인하면서 인수후보기업 달래기에 나섰다는 얘기다. 다만 외국자본 참여를 허용하되 참여비중이 높으면 감점을 준다는 점에선 STX에 다소 불리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채권단 내부에서 지분매각 방식에 대한 이견이 팽팽하다는 점에서 유 사장의 말이 그대로 지켜질지는 두고볼 일"이라고 지적했다.

안대규/이태명 기자 chihir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