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는 다산을 모르는 사람도 없지만 다산을 아는 사람도 없다. " 1990년대 초반 유홍준 명지대 교수는 답사 붐을 일으킨 베스트셀러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에서 이렇게 말했다. 다산 정약용의 이름은 다들 알지만 그에 대해 제대로 아는 사람은 드물다는 얘기였다.

유 교수가 이 책에서 해남과 함께 '남도답사 1번지'로 소개한 강진 또한 마찬가지다. 강진 하면 대개 다산초당,영랑 생가,무위사,청자도요지 등을 먼저 떠올리지만 강진은 예로부터 천혜의 항구이자 군사적 요충지였다. 남도 지역을 총괄하던 육군지휘부가 이곳에 있었고,제주도에서 훈련시킨 군마(軍馬)를 육지로 실어오던 곳도 강진이었다.

◆하멜의 흔적 남은 전라병영성

광주에서 월출산을 지나 강진으로 들어서 곧장 만나는 곳이 수인산(561m) 아래 병영면이다. 불고기백반으로 유명한 병영면 삼인리의 수인관(061-432-1027)에서 점심을 먹고 전라병영성으로 향했다. 병영성까지는 차로 5분 거리다. 병영성 앞에 내리자 원형의 웅장한 석축 뒤로 새로 지은 진남루(鎭南樓)가 위용을 드러낸다.

전라병영성은 조선 태종 17년(1417년)에 설치돼 고종 32년(1895년)까지 500년 가까이 전라도와 제주도의 53주 6진을 총괄한 육군의 총지휘부였다. 성곽의 총길이는 1060m,높이 4.87m,면적은 9만3139㎡에 달한다. 그러나 1894년 갑오농민전쟁 때 방화로 성 내부가 완전히 소실됐고 이듬해 갑오경장과 함께 폐영됐다. 병영성은 현재 복원 공사가 한창이다. 총 사업비 340억원을 투입해 2013년까지 마을과 객사,훈련장 등을 복원하면 순천 낙안읍성처럼 새로운 명소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전라병영성 바로 옆에는 커다란 풍차와 함께 하멜기념관이 있다. 네덜란드 동인도회사 서기였던 헨드릭 하멜은 1653년 8월 풍랑으로 표류하다 제주에 내린 이래 조선에 13년 28일 동안 억류됐고 그 중 13년을 이곳 병영성에서 살았다. 현재 남아있는 하멜의 대표적인 흔적은 성남리~지로리 일대의 병영마을 옛 담장,'한골목'이다. 1.5㎞에 이르는 한골목의 담장은 황토와 돌을 이용해 빗살무늬 방식으로 쌓았는데,다른 데선 볼 수 없는 독특한 형식이라 '하멜식 돌담'으로 불린다. 하멜기념관에는 《하멜표류기》를 비롯해 하멜의 생애,17세기 조선과 네덜란드의 생활문화,관련 유물 등이 전시돼 있다.

◆제주에서 말 싣고 오던 마량항

병영면에서 강진만 동쪽 끝으로 내려가면 강진이 자랑하는 미항인 마량항이 있다. 마량항은 고려시대부터 제주에서 훈련시킨 말을 육지로 싣고 와 내렸던 곳이다. 마량(馬良)에 내린 말은 일정 기간 적응훈련을 받다가 서울로 이송됐다고 한다. 지금도 마량 일대에는 원마(元馬),숙마(宿馬),원마(垣馬),백마(白馬),음마(飮馬),신마(新馬) 등의 지명이 있는데 신마는 새로 말을 받아서 적응시켰던 곳이고 숙마(宿馬)는 말을 잠 재웠던 곳이다. 또 원마(元馬)마을의 서북쪽에 장방형으로 남아 있는 마도진성(馬島鎭城)은 조선 태종 때 마도진이 설치돼 만호절제도위가 관장했고,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당시 거북선 1척이 상시 대기한 전력적 요충지였다고 한다.

고금도와 약산도가 든든하게 풍랑을 막아주는 마량항에 해가 진다. 미항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노을이 아름답다. 열대성 난대림 120여종이 빽빽히 우거진 까막섬이 수묵화처럼 떠 있다. 마량항에서 강진읍 쪽으로 올라가다 보면 폭이 좁아진 강진만의 한 가운데에 있는 가우도를 만나게 된다. 14가구 30여명이 사는 후박나무 군락지가 유명한 곳인데 동쪽의 대구면 저두마을과 섬을 잇는 403m의 출렁다리가 놓인 데 이어 올해 말까지는 서쪽의 도암면 망호마을과 연결하는 출렁다리도 놓을 예정이어서 새로운 명소로 부상하고 있다.


◆ 여행 팁

천혜의 미항으로 꼽히는 마량항에서는 토요일마다 흥겨운 음악회가 열린다. 2006년 가을부터 지속해온 상설무대로 동절기엔 오후 3시,하절기엔 오후 6시에 열리는데 매번 300명 이상이 참여해 음악으로 공감한다. 강진에서는 또 봄이면 영랑문학제,여름이면 강진청자축제와 탐진강은어축제,가을이면 다산제와 마량미항축제를 여는데 마량미항축제는 10월 초,다산제는 10월 중순으로 예정돼 있다.

남도 1번지인 만큼 이름난 맛집은 손에 꼽기 버거울 정도다. 한정식으로는 해태식당(061-434-2486) 청자골종가집(061-433-1100) 명동식당(061-434-2147)이 유명하고 병영면의 수인관과 설성식당(061-433-1282)은 돼지불고기백반으로 이름이 났다.

강진=서화동 기자 fire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