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식품업계 기술지도와 연구 협력을 위해 업체를 방문하면 예전과는 좀 다른 얘기를 듣는다. 전에는 식품의약품안전청의 식품 안전 감시를 걱정했으나 요즘은 공정거래위원회 조사가 두려워 영업하기가 어렵다는 게 요지다.

정부는 관련 제품가 등을 과도하게 인상하는 행위나,특히 제품의 질과 무관하게 가격을 올리는 프리미엄 · 리뉴얼 제품에 대한 점검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이를 통해 서민생활과 밀접한 가공식품의 편법 가격인상 행위에 대해 제재조치를 엄격하게 하겠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얼마 전 조사에서 식품업체들이 대형마트의 행사 제품 할인율을 합의했다고 고발했다. 업계 입장에선 할인율이 높을수록 매출 증대효과는 있으나 손익구조가 나빠지는 결과를 초래해 과도한 경쟁을 자제하고자 한 것이 원인이었다.

한편에서는 중소기업을 살린다는 명분으로 '중소기업 적합업종'을 선정하는 노력을 하고 있으면서 다른 한편에서는 유통업체의 과다한 가격 인하 횡포를 막고자 제조업체들이 자구책을 마련해 대응한 것을 두고 담합이라고 제재한 것이다. 그나마 대기업 식품업체들이니 대응이라도 한 것이지,중소업체들은 할인율을 거부하다간 거래가 끊겨 공장을 닫게 되므로 어쩔 수 없이 끌려가는 게 식품업체와 유통업체 간의 지배 구조다. 늘 그렇듯이 제조업체만 책임을 지는 일이 반복되고 있는 셈이다.

또한 정부는 최근 식품업체들이 가격 인상의 한 방법으로 리뉴얼 또는 업그레이드 제품을 출시한다며 부당한 가격 인상이 아닌지에 대한 조사에 착수했고 몇몇 제품이 도마에 올랐다. 맛과 영양 등 소비자의 기호 변화에 따라 고급화 전략을 토대로 개발한 신제품이 가격 인상을 위한 수단이라고 의심받게 된 것이다. 보는 관점에 따라 다르겠지만 서민생활과 밀접한 장바구니 물가 품목은 대부분 식품이 차지한다. 그러다 보니 마치 식품이 물가상승의 주범인 것처럼 사회적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다. 하지만 모든 원인이 식품기업에 있는 것처럼 국민 정서를 자극하는 것은 올바른 방법이 아니다.

우리나라 소비자들은 매우 현명해 식품을 구매할 때 가격과 품질을 꼼꼼히 비교해 선택한다. 똑똑한 소비자들을 대상으로 영업을 하고 살아남기 위해 기업은 철저한 시장경제 원리 아래에서 경쟁하고 있다. 최근 3년간 식품산업은 이물 이슈,유전자변형생물체(GMO),광우병,멜라민,방사선조사,일본 원전사고에 의한 방사능 오염 등 수많은 정책환경과 이해관계로 인해 뚜렷한 히트상품을 찾아보기 어려운 실정이다.

글로벌시장에서도 100대 기업에 이름을 올리지 못하고 있는 게 현주소다. 물가 잡기나 '공정'이란 명분으로 지나친 몰아세우기를 하다가 글로벌 식품기업으로 도약하고자 하는 우리 기업들이 자칫 감당하기 힘든 상처를 받고 의지가 꺾이는 일은 없어야 하겠다.

박기환 < 중앙대 식품공학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