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오랫동안 6 · 25가 남한의 주도로 시작됐다고 주장해왔으나 나는 역사를 위해 진실을 이야기 하겠다. '1990년 미국 리틀 브라운출판사가 펴낸 흐루시초프 전 소련공산당 서기장 회고록의 한 대목이다. 그는 6 · 25는 김일성이 주도했고 스탈린이 승인해 발발한 침략전쟁이라고 털어놨다. 당시 '구체적인 논의에는 참석하지 않았으나 스탈린 별장에 모두 모였을 때 최종 결정을 알았다'고 전했다. 또 '김일성은 절대적으로 승리를 확신하고 있었다'고도 회고했다.

리콴유 전 싱가포르 총리는 회고록을 내면서 판사로부터 신문을 받는다는 심정으로 글을 썼다고 했다. '지도자는 성공한 사람과 실패한 사람,교육을 받은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경영자와 노동자 사이의 페어플레이를 바탕으로 대중의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 ' 모호한 표현을 배제한 채 경제강국으로 성장하는 과정을 명쾌하게 기술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회고록으로 가장 큰 재미를 본 사람은 윈스턴 처칠이다. 그는 2차 세계대전 등 격변기의 각종 문서를 토대로 어려운 정책결정 과정과 인간적 고뇌를 담은 회고록을 쓴 덕에 1953년 노벨문학상까지 받았다.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의 회고록 '나의 인생'은 르윈스키 스캔들과 관련해 대중적 관심을 끌었다. 그는 르윈스키와의 밀애를 힐러리에게 고백한 뒤 두 달간 거실 소파에서 자야 했다고 고백했다. 암울했던 성장배경과 성격적 결함,정책 실수 등도 솔직하게 털어놨다. 회고록을 통해 진실을 밝히고 마음 속 깊은 고뇌를 드러내는 건 말처럼 쉽지 않다. 스캔들이나 실패를 변명하고 업적을 미화하는 자기방어용이 더 많다. 같은 일에 연루됐던 사람들의 증언이 서로 엇갈리기도 한다.

1992년 대선에서 김영삼 민자당 후보에게 선거자금 3000억원을 지원했다고 폭로한 '노태우 회고록' 파문이 가라앉지 않고 있다. 6 · 29선언은 전두환 전 대통령이 아니라 자신의 결단이고,5 · 17 비상계엄 확대는 인명과 재산을 보호하기 위한 치안유지 차원이라고도 했다.

김영삼 전 대통령 측은 '정치적 저의가 있는 게 아니냐'며 펄쩍 뛴다. 박철언 전 장관도 논란에 뛰어들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이 회고록을 준비중이라는 소문도 들린다. 입장에 따라 의견과 주장이 서로 엇갈리고 있다. 진실이 무엇인지 아직은 모호하다. 언젠가 밝혀지기는 할까.

이정환 논설위원 jh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