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루브르 박물관을 찾는 연 600만명의 관람객 중 80%는 모나리자를 보기 위해서라고 한다. 그만큼 모나리자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유명한 그림이다. 이유는 뭘까. 사람들은 모나리자가 좋은 그림으로서 갖춰야 하는 속성을 많이 갖고 있다고 생각한다. 다 빈치가 사용한 새로운 회화 기법,신비로운 모델,수수께끼 같은 미소,기막힌 배경 등이 그것이다.

하지만 그림이 꼭 좋은 속성들 때문에 유명해지는 것은 아니다. 세계적인 사회학자 던컨 왓츠는 최근 저서 '상식의 배반'에서 이와 관련한 재미있는 얘기를 들려준다. 모나리자가 처음부터 유명한 작품은 아니었다는 것.오랜 무명 시절을 보낸 모나리자가 세계적으로 유명해진 것은 20세기 들어서다. 1911년 빈첸조 페루지아라는 루브르 직원이 모나리자를 훔쳤는데,그는 자부심 강한 이탈리아인으로서 모나리자가 프랑스가 아니라 이탈리아에서 전시돼야 한다고 여기고 직접 본국으로 송환하기로 결심했다. 그러나 페루지아는 유명한 미술품은 훔치기보다 처리하기가 더 어렵다는 사실을 몰랐다. 2년 동안이나 자기 아파트에 모나리자를 숨겨뒀던 그는 피렌체의 우피치 미술관에 그림을 팔아 넘기려다가 체포됐다.

페루지아는 자기 사명을 완수하는 데는 실패했지만 모나리자를 세상에서 가장 유명하게 만드는 데는 성공했다. 도난 사건 이후 화가들은 모나리자를 따라 그리기 시작했고 셀 수 없을 만큼 많이 복제되고 재생산됐다.

사실 사람들은 예술 작품을 평가할 때 그 작품이 갖고 있는 속성의 수준으로 평가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반대로 행동하곤 한다. 즉 어떤 작품이 가장 훌륭한지 먼저 정하고 나서,그 수준에 걸맞은 좋은 속성들을 끄집어내곤 한다. 비즈니스에서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잘나가는 회사를 먼저 정한 다음,그 회사에는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좋은 속성이 반드시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다.

엔론은 1985년 텍사스주의 조그만 천연가스 파이프라인 회사로 출발했다. 송유관 사업을 하면서 얻은 경험을 바탕으로 1990년대 미국 에너지산업의 규제 완화 이후 전력 중개사업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전력 가격 급등락에 따르는 위험을 최소화하기 위해 업계 최초로 선물,옵션 등 첨단 금융 기법을 도입했다. 이후 축적된 금융공학 노하우를 광고,날씨,전파경매 등의 사업 영역에 적용해 큰 성공을 거뒀다. 중후장대형 기존 사업과 e-비즈니스를 결합한 독특한 사업모델이 때맞춰 불어온 인터넷 붐과 맞물리면서 엔론은 포천 500대 기업 중 7위를 기록하는 등 1990년대 후반 월 스트리트에서 가장 각광받는 기업 가운데 하나가 됐다.

이 과정에서 사람들은 엔론의 성공에 열광했고,너도나도 엔론 배우기 열풍이 불었다. 학계와 컨설팅 회사들은 엔론의 고속성장을 가능케 한 속성,즉 사업다각화와 파생상품을 통한 자금조달 기법 및 파트너십이라고 불리는 자회사 관리 기법 등을 칭송하기 바빴다. 기업들은 이런 경영기법을 벤치마킹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모두가 그렇게 엔론 배우기에 정신이 없던 2001년 12월 엔론은 파산했다. 그와 동시에 엔론이 성공할 수 있었던 진짜 이유도 세상에 드러났다. 엔론의 성공엔 흔히들 생각하듯 탄탄한 경영기법과 뛰어난 기술력보다는 장부 조작,막강한 로비,정치권과의 유착이 큰 몫을 했다. 그동안 엔론을 칭찬하기에 바빴던 학자들과 컨설턴트들은 꿀먹은 벙어리가 되고 말았다.

우리는 어떤 기업이 특출하게 성공을 거두거나 유명해지면 그 회사가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뭔가 좋은 속성들을 갖고 있기 때문이라고 여기는 경향이 있다. 아이폰이 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된 이유는 애플이 갖고 있는 혁신적인 디자인 역량과 이용자 편의를 고려한 유저 인터페이스 때문이라고 얘기한다. 하지만 좋은 속성과는 무관한 전혀 다른 이유로 해서 크나큰 성공을 거두게 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재미있는 사실은 시간이 지날수록 이런 성공 역시 우상화되고,성공에 필수적인 속성을 사후에 확보하게 된다는 것이다.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제대로 된 벤치마킹은 어렵다. 성공한 회사라고 무턱대고 따라해서는 안 된다. 성공과 그것을 가능케 한 속성과의 인과관계부터 차분하게 분석하고,그런 성공요인이 우리 회사에 적용될 수 있는지 꼼꼼하게 따져봐야 한다. 맥락을 무시한 벤치마킹은 오히려 회사를 망치는 독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우창 IGM 세계경영연구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