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게 마른 종이에 꽃 모양 흘려 그리고/ 둘러친 장막 속에서 밤도 낮도 없구나/ 판맛을 거듭 보자 어느 새 고수 되어/ 한마디 말도 없이 천금을 던지누나. ' 조선 후기 문인 강이천(1768~1801)이 한양의 경제 사회 현상을 기록한 '한경사(漢京詞)'에 담아낸 투전장면이다.

투전은 숙종(1661~1720) 시절,역관 장현이 중국에서 들여온 뒤 널리 퍼졌다. 군졸을 비롯한 관리들이 공금을 횡령하는가 하면 사기도박꾼 및 노름판 뒷돈을 꿔주는 분전노와 설주(고리대금업자)가 생겨나면서 가산을 거덜내고 투전빚에 몰려 자살하는 사람 또한 속출했다.

정조에 이르러'재물을 걸고 도박한 자는 장 80대에 처한다'(정약용 '목민심서')고 공표하고,포교를 풀어 단속해도 소용없었다. '나랏빚은 떼어먹어도 투전빚은 그럴 수 없다. 갚지 못하는 자는 입은 옷을 벗어야 하고,부족하면 가족과 다른 사람을 속여 빚을 내고,그러고도 안되면 남의 집 물건을 훔치게 된다'(윤기'家金')는 기록은 투전의 폐해가 어느 정도였는지 전하고도 남는다.

게다가 1876년 개항 이후 일본에서 도입된 화투는 투전과 골패 등 기존 노름을 대체하며 일제 강점기 내내 이 땅 수많은 사람을 도박의 늪에 밀어넣었다. 투전판 고수를 '타자(打子)'라고 한 데서 비롯된 '타짜'나 고스톱에서 피박을 면한다는 뜻인'면피'같은 말이 일상화된 걸 보면 우리 사회 전반에 내린 도박의 뿌리가 얼마나 깊었는지 짐작할 수 있다.

도박에 빠져드는 사람들은 두 부류다. 일상이 무료해서 자극이 필요한 사람과 생업을 통해 앞날을 기약하기 힘든 이들이다. 유흥업소 여종업원들을 상대로 사기 도박을 벌여 5년간 100억여원을 뺏은 일당이 경찰에 잡혔다고 한다. 피해자 중엔 도박빚에 시달리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람까지 있다는 마당이다.

확률론의 기초를 닦은 16세기 수학자 지롤라모 카르다노는 40년 도박 끝에'도박은 질 수밖에 없는 게임'이라고 말했다. 멈출 줄 모르면 꼭 사기 도박이 아니라도 패가망신하긴 마찬가지란 얘기다.

심심풀이 삼아 혹은 남루한 현실을 잊고자 손대는 사이 판은 커지고 ,본전이라도 건지겠다고 매달리다 보면 끝은 낭떠러지일 수밖에 없다. 절제는 개인의 몫이지만 정부 또한 사기 도박에 대해선 철저히 단속하고 도박 중독 예방 및 치료에 힘쓸 일이다.

박성희 수석논설위원 psh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