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유 유연제의 대명사 피죤이 1978년 창사 이후 최대 위기를 맞고 있다. 최근 언론 보도를 통해 이윤재(77) 회장의 회사 간부에 대한 엽기적인 폭행이 알려졌고 이와 함께 공금횡령 의혹까지 제기되면서 비난의 대상이 되고 있다. 이에 따라 30여 년간 국민들의 꾸준한 사랑을 받아 오던 피죤이 이제는 불매 운동의 대상이 됐다. 또한 피죤은 최근 30여 년간 지켜오던 섬유 유연제 시장의 선두 자리를 경쟁 업체에 내줬고 매출액도 감소세로 접어드는 등 실적 부진을 겪고 있어 총체적인 난국을 맞고 있다.
◆슬리퍼·페이퍼나이프 폭행 논란

이 회장은 직원들을 향해 ‘내가 먹여 살려주는 노비’라는 식의 표현을 한 적이 있으며 임직원들에게 폭언·욕설·폭행을 일삼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 회장이 몇 년 전 직원들 앞에서 한 팀장의 얼굴을 슬리퍼로 수십 차례 때린 적이 있고, 심지어 봉투 뜯는 칼(페이퍼 나이프)로 직원을 찌른 적도 있다는 진술도 나왔다. 이 회장은 또 임직원 폭행과 강제 해고에 대해 위로금으로 무마한 것이 확인돼 공금횡령 의혹도 사고 있다. 위로금뿐만 아니라 올해 1월 ‘설날 격려금 및 여비’ 명목의 총 2억6780만 원의 횡령 건과 실제 집행하지 않은 비용을 장부상 허위 기재하거나 공장 보수 공사 비용을 부풀려 차액을 비자금 조성에 활용했다는 의혹도 있다. 횡령 의혹에 대한 내부 문서 등 증거와 증언이 확보된 것으로 알려져 사실로 드러나면 사회적 파장이 커질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피죤은 이와 같은 내용을 일단 부정하고 있지만, 직원들의 이직률이 높고 ‘CEO의 무덤’ 등으로 알려지면서 경영에 큰 타격을 입고 있다. 2007년 이후 피죤에 몸담은 임원은 총 34명이지만 이들의 평균 재직 기간은 채 5개월이 되지 않는다. 같은 기간 4명의 사장도 불과 2~7개월 정도만 일하고 오너의 등쌀에 떼밀려 피죤을 떠난 것으로 전해졌다.

이 회장의 반사회적인 행동이 알려지자 온라인에서는 피죤에 대한 불매 운동을 벌이자는 네티즌의 움직임도 일고 있다. 트위터 등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에서는 ‘피죤의 근무자 중 폭행 목격자, 폭행 피해자’를 수소문하는 글이 리트윗으로 퍼져나가고 있다. 다음 아고라에서는 “사원을 개인의 노예처럼 부리며 인권유린을 서슴지 않는 업주가 생산하는 물품을 우리 가족을 위해 쓸 수 없습니다. 착한 소비자가 되는 길은 착한 기업이 정직하게 만드는 물품을 사용하는 길이라고 봅니다”라는 글과 함께 피죤 불매 운동이 진행되고 있다. 이 불매 운동은 8월 말까지 1000명 서명을 목표하고 있으며 8월 4일 현재 총 472명이 참여했다.

피죤에 대한 사회적 비난은 지난 30년간 섬유 유연제 시장에서 1위로 군림해 오던 피죤의 아성을 순식간에 무너뜨리고 있다. 시장점유율에서 피죤은 이미 경쟁 업체인 LG생활건강의 ‘샤프란’에 밀려 지난 1월께 2위로 떨어졌다. 2007년 48%였던 피죤의 점유율이 지속적으로 떨어지면서 올해 36%까지 내려앉았다. 업계에서는 “경영진의 지나친 자신감 때문에 시장의 판도를 제대로 읽지 못해 1위 자리를 내줬고 회장 일가의 파행 인사, 공금횡령, 권위적인 기업 문화가 결국 실적 부진으로 이어진 것”으로 보고 있다.
◆독단 경영은 실적 부진으로

실제 피죤은 2009년까지 매출액이 지속적으로 성장했으나 2010년 1436억 원으로 꺾이면서 전년(1654억 원) 대비 13.1% 감소했다. 영업이익은 2009년 119억 원에서 2010년 58억 원으로 반 토막 났다. 단기 차입금은 2010년 284억 원으로 60%나 급증하며 부채비율이 80%에서 104%로 껑충 뛰었다. 최근 피죤의 매각설이 생활용품 업계에서 나돌기도 했다.

올 들어 원자재 가격이 급등하면서 원가 압박이 심해진 가운데 지나친 자신감으로 가격 정책 수립에 실패한 것도 위기의 원인으로 파악된다. 섬유 유연제의 원료로 쓰이는 팜오일은 올해 초 국제 시세가 전년 동기 대비 27% 올랐다. 피죤은 원가가 오르자 판매 가격도 즉각 인상했다. 하지만 경쟁 제품들은 가격 인상을 유보해 홀로 비싸진 피죤은 소비자들의 외면을 받게 됐다.

지난 1월 업계 1위를 내준 피죤은 3~4월 들어 점유율이 27%까지 떨어졌다. 반면 경쟁 제품인 샤프란은 43.7%의 점유율을 보이며 승승장구하고 있다. 그 배경 중 하나는 대형 마트가 피죤 측에 할인 행사 또는 ‘1+1’ 행사 등을 요청했지만 피죤이 고가 정책을 고수하며 입고를 중단시켰기 때문이다. 이 역시 이 회장의 독단 경영이 문제의 원인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 회장이 지난 1월 중순 진천 공장을 갑작스레 방문해 대형 마트에 공급하는 할인 상품은 수익성이 낮다며 공급을 중단할 것을 지시했고 직접 공장 가동 스위치를 꺼버린 것으로 전해졌다. 공장 가동 중단으로 대형 마트에 물품 공급이 이뤄지지 않아 6000만 원 가까운 배상금을 물었다. 점유율이 계속 떨어지자 최근 피죤은 부랴부랴 기존의 고가 정책을 버리고 ‘1+1’ 행사를 다시 실시했다. 이마트와 롯데마트에 재입고를 시작했지만 이미 떠난 고객의 마음은 그 사이 멀어져 있었다.

올 들어 경영 사정이 급격히 악화되자 이 회장은 지난 6월 퇴사한 이은욱 전 사장을 대신해 직접 경영 일선에 나섰다. 피죤의 경영은 창업자인 이 회장과 딸인 이주연 부회장이 전두지휘하고 있다. 그리고 이 회장의 부인 안금산 씨는 감사를 맡고 있다. 최근 이 회장은 자동차 사업 분야를 정리하고 유아용품 사업도 재정비에 나섰다. 피죤은 일본 혼다자동차 딜러십을 갖고 있는 피죤모터스를 운영하고 있고 ‘피죤’ 브랜드로 팔던 유아용품은 2009년 일본 피죤과의 계약 만료 후 ‘보즐’이라는 브랜드로 제품을 내놓고 있다. 피죤의 매출 비중은 섬유 유연제가 64.1%로 압도적으로 높고 세탁 세제 20.8%, 세정제 3.5%, 유아용품·자동차 등 기타 11.6%로 구성돼 있다.

이 회장은 한편 중국 시장에의 적극적인 진출로 자구책을 찾고 있지만 그 역시도 순탄해 보이지 않는다. 피죤은 약 20년 전 중국에 이미 진출한 바 있으나 실패의 쓴맛을 본 적이 있다. 피죤은 지난해 중국에 재진출하면서 톈진에 연간 2만5000여 톤을 생산하는 공장을 준공했다. 하지만 중국에는 이미 P&G나 유니레버 등 글로벌 기업이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어 진입 장벽이 만만치 않다.

비상장 중견 기업인 피죤은 사회적 감시가 소홀해 내부 비리와 전횡이 만연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이와 함께 이 회장의 반사회적인 경영 실태가 세간에 폭로되면서 불에 기름을 부은 형상이 됐다. 피죤은 중국 진출과 관련해 투자 확대를 위해 국내 법인 상장을 준비하고 있다. 상장을 위한 기업공개(IPO)를 앞두고 있는 피죤이 기존 전근대적 경영 문화를 버리고 새로운 경영 혁신 행보를 보일지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이진원 기자 zinone@hankyung.com

<본 기사는 한국경제매거진 한경BUSINESS 819호 제공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