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희 칼럼] 냉장고 얼음통과 강아지 밥그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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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하·좌우로 위치 바꿔 문제 해결…삼성전자, 섬세함과 배려 더해야
몇 년 동안 강아지 물그릇이 문제였다. 거실 한 쪽에 물그릇과 밥그릇을 나란히 뒀는데 외출 전 밥그릇에 간식을 주면 뛰어가다 물그릇을 건드리는 통에 번번이 물이 엎질러지곤 했다. 바닥에 강아지 화장실로 쓰는 방수 기저귀를 깔아놨지만 툭하면 물이 흘러 거실 마루를 적셨다. 강아지를 야단쳐봐야 소용 없었다.
골치를 썩던 일은 어느 날 물그릇과 밥그릇의 위치를 바꾸면서 단숨에 해결됐다. 위치 상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뛰어가는 강아지의 동선을 감안,오른쪽에 뒀던 밥그릇을 왼쪽으로 옮기자 물그릇을 치지 않게 된 것이다. 그토록 간단한 걸 모르고 그냥 뒀다 마루에 물 얼룩을 만들었다 싶으니 한숨이 절로 나왔다.
냉장고 얼음통도 마찬가지였다. 결혼 후 3대의 냉장고를 샀다. 처음엔 얼음통이 든 것,다음엔 자동 얼음제조기가 설치된 것,마지막엔 도로 얼음통이 있는 걸로 골랐다. 얼음제조기 부착제품의 경우 물을 따로 얼릴 일이 없어 좋았지만 수도에 연결해야 하는 만큼 때 맞춰 정수기를 가는 일이 번거로웠던 까닭이다.
첫 번째와 세 번째 모두 얼음통은 아래 쪽 서랍 위칸에 있었다. 얼음을 꺼내려면 무릎을 굽혀야 했다. 몇 달 전 매장에서 신제품을 구경하다 "얼음통이 왜 이렇게 밑에 있는지 모르겠다"고 했더니 직원 왈 "옮기면 돼요" 했다. 집에 돌아온 즉시 위쪽으로 옮겼더니 더없이 편해졌다. 냉동실을 열어두는 시간도 줄었다.
강아지 물그릇과 똑같이 불편해 하면서도 얼음통의 위치를 바꾼다는 생각을 못했던 것이다. 습관과 관행은 이렇게 무섭다. '너만 몰랐다'고 하면 할 말이 없다. 그러나 가전제품 매장에선 왜 아래 쪽에 뒀던 건가? 제조업체에서 그 상태로 가져왔기 때문이리라.그렇다면 가전업체에선 어째서 여태껏 거기다 놨을까.
한 해가 멀다 하고 새로운 디자인을 내놓으면서 말이다. 얼음그릇의 위치가 바뀌지 않은 건 작은 일이라 생각,무심하게 지나친 데다 냉장고의 기술과 디자인을 책임진 이들이 얼음통을 직접 써보지 않았기 때문일 수 있다. 얼음을 꺼낼 때마다 무릎을 굽혀봤다면 달라졌을지 모른다.
어디서든 말은 쉽다. '발상을 전환하라.창의적으로 사고하고 도전하라.' 그러나 습관과 관행은 좀처럼 바뀌지 않고,아랫사람의 색다른 생각이나 기발한 아이디어는 윗사람의 권위를 부인하거나 기존 질서를 위협하는 당돌하고 건방진 짓으로 여겨지기 일쑤다. 애써 제시한 방안이 "전에 다 해봤다"거나 "현실성이 없다"며 무시되는 일도 다반사다.
같은 일이 반복되면 다들 관찰과 호기심에 따른 질문과 의견을 잃고 입을 닫는다. 의문을 품어봤자 불만스럽고 피곤해지는 데다 주위의 눈총만 더해지니 괜한 짓 그만두고 남들 하는 대로 따라하자 마음먹는 것이다. 콜럼버스의 달걀 세우기나 알렉산더 대왕의 '고르디오스 매듭'자르기 같은 일이 이뤄지기 힘든 이유다.
고정관념을 벗어나야 한다는 건 말뿐 대부분 달걀은 둥그니 세울 수 없고,헝클어진 매듭은 끄트머리를 찾아야 풀 수 있다고 믿는다. 사정이 나쁜 곳만 그런 것도 아니다. 오히려 잘나가는 곳에서 더할 수 있다. 휴브리스,곧 그간의 성공에서 비롯된 자만심으로 인해 주위의 의문이나 이의에 대한 수용을 거부하는 것이다.
세계 초일류 기업 삼성전자가 몇 년 전 냉장고 폭발로 곤욕을 치른 데 이어 최근 에어컨에서도 문제를 빚었다. 탈이 났던 냉장고 모델 일부는 리콜 조치 이후 냉장실 기능이 완벽하지 않다. 전원 꺼짐 현상 등으로 문제가 된 AF계열 에어컨의 경우 원인을 근본적으로 해결하고 공식사과하는 한편 교환 · 환불도 했다지만 해당제품을 구입했던 소비자들의 화와 불신을 잠재우자면 시간이 걸릴 것이다.
성공과 발전은 물론 패배와 쇠퇴의 요소 또한 크고 대단한 것에만 있지 않다. 개인과 조직 모두 승승장구할 때일수록 작고 사소하다 싶은 일들에 대한 관심과 세심한 배려를 잊지 않아야 한다. 성공에 취해 보지 못하거나 당연한 게 많아지면 변화는 더뎌지고 발전은 멀어진다.
박성희 수석논설위원
골치를 썩던 일은 어느 날 물그릇과 밥그릇의 위치를 바꾸면서 단숨에 해결됐다. 위치 상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뛰어가는 강아지의 동선을 감안,오른쪽에 뒀던 밥그릇을 왼쪽으로 옮기자 물그릇을 치지 않게 된 것이다. 그토록 간단한 걸 모르고 그냥 뒀다 마루에 물 얼룩을 만들었다 싶으니 한숨이 절로 나왔다.
냉장고 얼음통도 마찬가지였다. 결혼 후 3대의 냉장고를 샀다. 처음엔 얼음통이 든 것,다음엔 자동 얼음제조기가 설치된 것,마지막엔 도로 얼음통이 있는 걸로 골랐다. 얼음제조기 부착제품의 경우 물을 따로 얼릴 일이 없어 좋았지만 수도에 연결해야 하는 만큼 때 맞춰 정수기를 가는 일이 번거로웠던 까닭이다.
첫 번째와 세 번째 모두 얼음통은 아래 쪽 서랍 위칸에 있었다. 얼음을 꺼내려면 무릎을 굽혀야 했다. 몇 달 전 매장에서 신제품을 구경하다 "얼음통이 왜 이렇게 밑에 있는지 모르겠다"고 했더니 직원 왈 "옮기면 돼요" 했다. 집에 돌아온 즉시 위쪽으로 옮겼더니 더없이 편해졌다. 냉동실을 열어두는 시간도 줄었다.
강아지 물그릇과 똑같이 불편해 하면서도 얼음통의 위치를 바꾼다는 생각을 못했던 것이다. 습관과 관행은 이렇게 무섭다. '너만 몰랐다'고 하면 할 말이 없다. 그러나 가전제품 매장에선 왜 아래 쪽에 뒀던 건가? 제조업체에서 그 상태로 가져왔기 때문이리라.그렇다면 가전업체에선 어째서 여태껏 거기다 놨을까.
한 해가 멀다 하고 새로운 디자인을 내놓으면서 말이다. 얼음그릇의 위치가 바뀌지 않은 건 작은 일이라 생각,무심하게 지나친 데다 냉장고의 기술과 디자인을 책임진 이들이 얼음통을 직접 써보지 않았기 때문일 수 있다. 얼음을 꺼낼 때마다 무릎을 굽혀봤다면 달라졌을지 모른다.
어디서든 말은 쉽다. '발상을 전환하라.창의적으로 사고하고 도전하라.' 그러나 습관과 관행은 좀처럼 바뀌지 않고,아랫사람의 색다른 생각이나 기발한 아이디어는 윗사람의 권위를 부인하거나 기존 질서를 위협하는 당돌하고 건방진 짓으로 여겨지기 일쑤다. 애써 제시한 방안이 "전에 다 해봤다"거나 "현실성이 없다"며 무시되는 일도 다반사다.
같은 일이 반복되면 다들 관찰과 호기심에 따른 질문과 의견을 잃고 입을 닫는다. 의문을 품어봤자 불만스럽고 피곤해지는 데다 주위의 눈총만 더해지니 괜한 짓 그만두고 남들 하는 대로 따라하자 마음먹는 것이다. 콜럼버스의 달걀 세우기나 알렉산더 대왕의 '고르디오스 매듭'자르기 같은 일이 이뤄지기 힘든 이유다.
고정관념을 벗어나야 한다는 건 말뿐 대부분 달걀은 둥그니 세울 수 없고,헝클어진 매듭은 끄트머리를 찾아야 풀 수 있다고 믿는다. 사정이 나쁜 곳만 그런 것도 아니다. 오히려 잘나가는 곳에서 더할 수 있다. 휴브리스,곧 그간의 성공에서 비롯된 자만심으로 인해 주위의 의문이나 이의에 대한 수용을 거부하는 것이다.
세계 초일류 기업 삼성전자가 몇 년 전 냉장고 폭발로 곤욕을 치른 데 이어 최근 에어컨에서도 문제를 빚었다. 탈이 났던 냉장고 모델 일부는 리콜 조치 이후 냉장실 기능이 완벽하지 않다. 전원 꺼짐 현상 등으로 문제가 된 AF계열 에어컨의 경우 원인을 근본적으로 해결하고 공식사과하는 한편 교환 · 환불도 했다지만 해당제품을 구입했던 소비자들의 화와 불신을 잠재우자면 시간이 걸릴 것이다.
성공과 발전은 물론 패배와 쇠퇴의 요소 또한 크고 대단한 것에만 있지 않다. 개인과 조직 모두 승승장구할 때일수록 작고 사소하다 싶은 일들에 대한 관심과 세심한 배려를 잊지 않아야 한다. 성공에 취해 보지 못하거나 당연한 게 많아지면 변화는 더뎌지고 발전은 멀어진다.
박성희 수석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