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은 초고속으로 흐르죠.우리는 살아남기 위해 숨조차 빨리 쉴 것을 강요받고 있어요. 빨리 움직이는 세계에서 수평적 흐름에 저항해 영적으로,수직적으로 연결된다는 것이 무엇인지 찾고 싶었습니다. "

혁신적 안무로 유명한 영국 안무가 아크람 칸(38)이 최근작 '버티컬 로드'로 한국 관객을 찾는다. 내달 30일부터 이틀간 서울 역삼동 LG아트센터를 찾는 아크람 칸은 2007년 실비 기옘과 '신성한 괴물들'을,2009년 프랑스 여배우 쥘리에트 비노슈와 '인-아이'를 공연해 국내 관객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그는 다른 장르를 대표하는 작가들과의 협업으로도 유명하다. 영국 최고 권위의 현대미술상인 터너상을 수상한 조각가 앤서니 곰리와 아니시 카푸어,영국 최고 음악상인 머큐리상을 수상한 작곡가 니틴 소니,영국 현대문학을 대표하는 작가 하니프 쿠레이시,세계적인 여배우 쥘리에트 비노슈 등 쟁쟁한 금세기 예술가들과 작업해왔다.

'버티컬 로드'는 순수한 춤으로의 귀환이라 더 주목받는다. 죽음 뒤의 삶을 준비하기 위해 기억을 따라 삶의 여러 단계를 거쳐가는 한 여행자의 여정이 담긴 이 작품은 도시 속 삶의 노예가 된 관객을 명상하게 만든다. 그는 "기술 중심의 현대사회를 '수평적인 길'로 규정하고,현대사회에 매몰돼 노예처럼 살아가는 인간이 진실과 깨우침을 얻기 위해 겪는 과정을 '수직적인 길'로 정의했다"며 '버티컬 로드'의 안무 철학을 얘기했다. 또 "이슬람과 기독교에서 공통으로 말하는 '승천'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말했다.

물 흐르는 소리가 들리면 반투명의 얇은 막에 머리를 대고 있는 살라흐 엘 브로기의 실루엣이 드러난다. 그가 고통스러운 듯 팔을 움직이면 파도처럼 막에도 물결이 퍼져나간다. 그의 앞에 7명의 무용수들이 웅크리고 있다가 브로기가 그들 사이로 들어오면 다같이 움직임을 시작한다. 몸에 쌓였던 하얀 먼지가 공중으로 퍼져나갈 때 강렬한 비트의 음악이 흐른다. 다리는 묵직하게,팔은 격렬하게 움직이며 전기 충격을 받은 듯 긴장감 넘치는 춤을 춘다. 마지막 장면에서 브로기가 홀로 등장해 선보이는 간절한 몸짓이 이 작품의 하이라이트다. 야곱의 사다리를 통해 천국과 지상을 오가는 천사들의 이미지,진시황릉의 테라코타 병사들과 시드니의 택시 운전사까지 다양한 이미지로 가득하다. 방글라데시인 부모에게서 태어난 아크람 칸은 인도 전통무용인 카탁의 유명 지도자인 프라탑 파와르를 사사했다. 14세에 거장 연출가 피터 브룩과 로열 셰익스피어컴퍼니의 전설적 작품 '마하바라타'로 연극 무대에 섰다. 발레와 현대무용을 두루 섭렵한 그는 전통무용에서 느낄 수 없었던 자유로움과 해방에 중점을 둔 테크닉을 통해 무용스타일을 확립했다. '폴라로이드 피트(2001)' '로닌(2003)' '서드 카탈로그(2005)' 등 솔로 작품을 통해 고전 카탁 레퍼토리와 현대적인 작품을 실험하면서 '컨템포러리 카탁'이라는 장르를 탄생시켰다. (02)2005-0114.

김보라 기자 destinyb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