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동의 국내 현물가격이 이달 들어 큰 폭으로 떨어졌다. 지난달 말 대비 하락률이 7.8%에 이른다. 미국 신용등급 강등,유럽 재정위기 확산 등의 여파로 전기동 국제 가격이 급락한 데 따른 것이다.

조달청은 16일 중소기업에 공급하는 비축 전기동 가격을 t당 1042만원(부가가치세 포함)으로 책정했다. 이는 지난달 말 t당 1130만원에 비해 88만원 내린 것이다. 한 달 전보다는 6.6% 싸졌다.

올 1분기 t당 1200만원 내외에서 움직이던 국내 전기동 현물가격은 지난 5월 중순 t당 1030만원대로 떨어진 뒤 미국 경기회복 가능성에 힘입어 지난달 하순까지 상승했었다.

이달 들어 국내 전기동 현물가격이 크게 내린 것은 영국 런던금속거래소(LME)의 전기동 가격 하락세가 이달 초 이후 이어진 게 1차적인 요인으로 꼽힌다. 이달 초 t당 9847달러(공식 가격 기준)이던 LME 전기동 가격은 15일(현지시간) 8844달러로 보름 만에 10.2% 떨어졌다. 이종호 이트레이드증권 해외선물팀장은 "신용평가기관인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가 미국 신용등급을 한 단계 내린 데 이어 그리스에서 촉발된 유럽 재정위기가 프랑스로 번질 가능성까지 제기되면서 글로벌 자금이 상품시장에서 빠져나간 것이 최근 전기동 가격하락 원인"이라고 설명했다.

주요 선진국 주가가 일제히 급락하는 등 국제 금융시장이 요동치는 가운데서도 원화 환율이 안정을 보인 것도 결과적으로 전기동 가격하락을 이끈 요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미국 신용등급이 내려가기 직전인 지난 5일 1067원40전이던 달러당 원화 환율은 16일 1070원으로 0.24% 올라가는 데 그쳤다. 전문가들은 "2008년 하반기 글로벌 금융위기 때는 국제 상품가격이 급락했지만 국내 금융회사 위기설이 부상하면서 원화 환율도 크게 올라 전기동 등의 국내 현물가격이 국제 가격을 그대로 반영하지 못했다"며 "미국 신용등급 강등으로 시작된 이번 글로벌 금융시장 위기는 2008년과 다른 양상"이라고 지적했다. 향후 전기동 가격에 대해선 '단기 조정,중 · 장기 상승'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단기적으로는 이탈리아 프랑스 등의 국가 신용등급 및 유럽 은행들의 신용등급 강등 뉴스가 나올 경우 t당 8500~9000달러 박스권에서 움직일 것이란 관측이다. 손양림 코리아PDS 연구원은 그러나 "최근 전기동 공급이 원활치 않은 상황에서 상반기 전기동 수입량을 크게 줄인 중국이 조만간 본격적인 비축에 들어갈 것으로 전망된다"며 "유럽 재정위기와 미국 신용등급 강등 파장이 잦아질 경우 올 3분기 말이나 4분기 초반 t당 1만달러 돌파를 시도할 것"으로 내다봤다. 그는 "전 세계 전기동 생산량의 34%를 차지하는 칠레의 올 상반기 생산량이 광산파업 등의 영향으로 작년 같은 기간에 비해 2.3% 줄어드는 등 공급 부문이 정상적이지 않다"고 덧붙였다.

이종호 팀장은 "미국이 2년간 제로금리를 유지하기로 하면서 시중에 많이 풀린 유동성이 단기간에 줄어들 가능성이 낮아진 점도 중 · 장기적으로 상품가격을 지지하는 요인이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 팀장은 "유럽지역 전기동 현물 프리미엄이 t당 100달러 이상 유지되는 등 재정위기를 겪고 있는 유럽의 산업 수요는 여전히 강한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고 말했다.

김철수 기자 kcs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