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일 경기도 양수리 선영에 현대가(家) 가족들이 모였다. 고(故)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매제인 고 김영주 한국프랜지공업 명예회장의 1주기를 기리기 위해서였다.

이 자리엔 현대가의 유일한 생존 1세대 경영인인 정상영 KCC 명예회장을 비롯해 정몽준 전 한나라당 대표,정몽진 KCC 회장,정몽윤 현대해상화재보험 회장,정몽규 현대산업개발 회장,정의선 현대자동차 부회장,정지선 현대백화점 회장 등 일가 대부분이 참석했다.

정 전 대표는 이날 삼촌인 정 명예회장에게 "사회복지재단 설립을 위해 사재를 내놓겠다"는 뜻을 밝혔다. 정 명예회장은 조카의 제안에 즉석에서 흔쾌히 동참 의사를 나타낸 것으로 전해졌다. 다른 가족들도 재단 설립을 위해 뜻을 같이하기로 했다. 현대가 오너들과 기업들이 함께 사회복지재단을 설립하게 된 배경이다.

◆"아산 정신 계승해 청년창업 지원"

현대중공업과 KCC,현대해상화재보험,현대백화점,현대산업개발 등 현대가 기업 사장들은 16일 서울 계동 현대사옥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5000억원 규모의 아산나눔재단 설립안을 발표했다.

재단설립준비위원회 위원장을 맡은 정진홍 서울대 명예교수는 "고 정주영 명예회장의 직계 후손과 형제,조카들이 창업자인 고인의 10주기를 맞아 뜻있는 사업을 논의한 끝에 시대적 화두인 '나눔의 정신'을 구현하기 위해 사회복지재단을 설립하기로 뜻을 모았다"고 밝혔다.

정 위원장은 "복지라는 단어가 생소하던 1977년 아산 정주영은 아산사회복지재단을 설립해 소외된 지역에 병원을 세우고 어려운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주는 사회복지사업을 지원했다"며 "창업자의 도전정신과 개척정신이 우리 사회에 많이 전파되도록,이번에 설립하는 아산나눔재단은 양극화 해소를 위한 나눔의 복지를 실현하고 청년들의 창업정신을 고양하고자 한다"고 강조했다.

재단 설립을 주도한 정 전 대표의 역할에 대해선 "최대주주일 뿐 재단 이사회에는 참여하지 않기로 했다"고 전했다.

아산나눔재단의 설립기금은 총 5000억원이다. 정 전 대표가 현금 300억원과 주식 1700억원 등 총 2000억원을 내놓으며 재단 설립을 주도했다. 정몽근 현대백화점 명예회장 부자(100억원),정상영 명예회장 부자(50억원),정몽규 회장(50억원),정몽윤 회장(20억원),정몽석 회장(20억원) 등 다른 가족들도 사재 240억원을 출연한다.

현대중공업그룹 계열 6개사는 2380억원을 내고 KCC 현대해상화재보험,현대백화점,현대산업개발,현대종합금속 등 나머지 기업들이 380억원을 출연한다. 해비치사회공헌재단을 운영하고 있는 현대차와 현대그룹은 사회복지재단 구성에 참여하지 않았다.

◆재계 사회공헌 확산 계기 될 듯

재단설립준비위원회는 이날 창업자인 고 정주영 명예회장 타계 10주기를 맞아 고인의 '나눔정신'을 계승하고 사회문제 해결에 동참하기 위해 재단을 설립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재계에서도 "그동안 안팎으로 어려움을 겪은 뒤 사회공헌 방안을 내놨던 다른 기업들과 달리 이번 현대가의 사회복지재단 사재 출연은 자발적으로 이뤄졌다는 데 큰 의미가 있다"는 긍정적인 평가가 나온다.

이에 따라 대기업들의 기부나 복지재단 설립 등 사회공헌 움직임이 확산될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이 8 · 15 경축사에서 새로운 화두로 제시한 '공생발전' 화두와 맞물려 대기업들의 사회공헌 참여를 늘리는 계기가 될 것이란 분석이다. 4대 그룹의 한 임원은 "이 대통령이 동반성장과 상생을 재차 강조하고 나선 분위기여서 현대가의 이번 복지재단 출연은 다른 기업들에 큰 영향을 줄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삼성그룹은 최근 소모성 자재 구매대행(MRO) 사업에서 철수한 데 이어,삼성전자가 2015년까지 50개 협력사를 글로벌 기업으로 육성한다는 동반성장안을 내놨다. 현대자동차그룹, LG,SK,포스코,롯데 등 주요 대기업들도 추가 사회공헌 대책을 강구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장창민 기자 cmj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