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접하는 낯선 것과 여러 번 접해서 익숙한 것.둘 중에 어떤 것이 더 두려운가? 모두가 처음 접하는 낯선 것이라 대답할 것이다. 필자도 그랬다. 영업사원으로 남영비비안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 난생 처음 일본으로 해외출장을 갔을 때였다. 단 두세 시간의 비행으로 올 수 있는 가까운 거리이고 비슷한 문화권임에도 불구하고 한 번도 와 보지 않은 곳에서의 경험은 낯설었다. 어느 쪽으로 가야 하는지 방향감각도 서투르고 모든 것이 익숙하지 않아 여러 가지 실수를 했던 것이 기억난다.

하지만 몇 번의 출장이 이어지고 익숙해지면서 두려운 감정은 없어졌다. 더불어 처음 접했던 설레는 감정도 없어졌다. 그런데 오히려 익숙하다고 생각하면서 저지르는 실수들이 많아졌다. 지하철 환승역을 잘못 찾는다든가,분명히 여러 번 가본 장소를 잘못 안내하는 등 어이없는 실수를 하기도 했다.

처음 접하는 외국의 문물뿐 아니라 무엇이든 처음 하는 것은 낯설고 설렌다. 낯설기 때문에 그만큼 두려운 마음도 생긴다. 하지만 몇 번 경험하고 나면 생소한 느낌은 없어지고 익숙해진다. 그리고 익숙하다는 안도감에서 오는 자만심이 그 자리를 채우게 된다. 그래서 필자는 낯선 것보다 더 두려워해야 하고 경계해야 할 것이 '익숙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원숭이도 나무에서 떨어진다'고 하지 않았던가. 누구나 한 번쯤은 자신이 가장 잘 알고 잘 할 수 있다고 생각한 부분에서 실수를 해 어려움에 처한 경험이 있을 것이다.

기업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과거의 성공 경험은 기업에 강한 자신감을 주며 다시 새로운 것에 도전할 수 있게 하는 원동력이 된다. 성공 경험이 차곡차곡 쌓여 경쟁력이 되기도 하지만,때로는 성공 경험에 대한 집착이 반대로 기업을 위험에 처하게 하는 경우도 있다. 전에 비해 현재에는 경영 환경이나 소비자들의 성향이 판이하게 달라진 것은 간과한 채,이전과 똑같은 방식으로 과거에만 의지하려 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새로운 사업에 대한 도전이나 새로운 분야 개척에 소홀히 해 소비자들에게 외면당하고 쓸쓸히 뒤안길로 사라진 기업이나 브랜드가 수없이 많았다. 또한 성공을 가능하게 한 고객들의 소중함을 망각하고 자만하다가 고객들로부터 외면당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남영비비안도 창립 이후 성공의 경험에 취해 예전의 방식 그대로를 고수했다면 아마 지금의 남영비비안은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과거 디자인은 뒷전이고 기능만을 중요하게 생각했던 소비 패턴에서 속옷도 패션의 일부로 생각하는 소비자들의 성향을 파악하고,그 해의 유행에 어울리면서도 소비자들의 눈높이에 맞춘 상품들을 제때 선보이는 노력이 있었기에 오늘의 비비안이 가능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필자는 늘 강조한다. 낯설지 않고 익숙한 것은 시간이 지나면 어느덧 의미 없는 것이 돼버리기 때문에,익숙해져 버린 것을 늘 경계하고 두려워하라고 말이다.

김진형 < 남영비비안 사장 kjh@vivien.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