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현실의 산업정책 읽기] 구글의 자충수다
마이크로소프트(MS)가 잘나갈 때의 일이다. 미국 법무부는 브라우저 전쟁조사에 들어갔다. 넷스케이프 등 경쟁기업에 대한 MS의 불법행위 증거를 포착했던 것이다. 그러나 MS의 대응은 현명하지 못했다. 의회에 로비를 해 법무부 예산을 삭감해 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오만은 판단력을 흐리게 할 수 있다.

구글이 모토로라의 휴대폰을 인수한다. 특허를 보강해 안드로이드 운영체제(OS)와 이를 이용하는 기업을 특허소송에서 보호하겠다는 명분이다. 그러나 그 방법이 모토로라 인수밖에 없었는지 왠지 석연치 않다. 구글은 안드로이드 진영의 삼성전자 등 스마트폰 제조사들이 오해하지 않도록 모토로라는 독립적으로 운영될 것이고 안드로이드의 개방성도 지키겠다고 했다.

하지만 이번 인수는 양날의 칼이다. 애플 등 외부의 적을 막겠다지만 내부 의 신뢰를 베어버릴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구글은 지금까지 안드로이드 생태계가 더 많은 제조사들에 의해 확대되면,더 많은 모바일 사용자들이 온라인에 접속하게 되고,그로부터 광고로 수익을 얻으면 된다는 논리였다. 그러나 이제 그 의도를 의심받게 됐다. 같은 건물에서 장사를 해도 건물주 소유 중국집과 남이 하는 중국집이 같을 수는 없는 법이다. "사악하지 말라"는 게 구글의 모토라지만 상대가 그렇게 믿어줄 때나 유효한 것이다.

구글과 삼성은 윈-윈 관계였다. 삼성은 구글을 등에 업고 애플을 맹추격했고,그 덕에 구글은 생태계를 넓혔다. 그런데 구글이 직접 나서도 되겠다는 생각을 했다면 이는 패착일 가능성이 크다. 구글이 뒤늦게 제조의 가치를 느꼈는지 몰라도 그들이 제조를 잘할 수 있다는 보장은 없다. 소프트웨어 업체들은 가치사슬의 위에 있다고 믿는다. 그래서 제조는 아무나 할 수 있다는 오류에 곧잘 빠진다. 하지만 하드웨어에 대한 깊은 이해 없이 좋은 소프트웨어가 나올 수 없다. 당장은 애플이 잘나가니 구글로서도 답답한 점이 있을 수있다. 그러나 애플은 오랫동안 제조와 소프트웨어를 함께했다. 그래서 무섭다. 그런 애플을 이기려면 구글로서는 일관되게 OS를 개방하고,경쟁력 있는 제조사들을 최대한 많이 끌어들이는게 최선의 전략이다. 결국 구글도 판단력이 흐려지고 만 것 같다.

'소프트웨어 업체의 역습''국내업체의 위기'라고 하지만 꼭 그렇게 볼 일만은 아니다. 스스로 비하할 이유도 없다. 국내 기업들은 최고의 제조 경쟁력을 보유하고 있다. 전 세계 업체들이 애플 공세에 넋을 잃었을 때 바로 추격에 들어간 것은 삼성뿐이었고,그 힘도 여기서 나왔다. 애플이 삼성에 특허시비를 건 것도 추격이 위협적이라는 방증이다. 일단 눈에 포착되면 세계 어느 기업보다 빠르게 추격할 능력을 갖춘 것이 한국 기업들이다.

구글이 지배적 디자인이 될 가능성이 있던 OS를 여기서 멈추겠다면 차라리 잘됐다. OS는 혼전 양상이다. 삼성이 보유한 OS'바다', 다른 OS를 갖고 있는 기업의 인수 · 합병 등을 통해 경쟁구도를 더 복잡하게 만들 수도 있다. 국내업체들이 소프트웨어가 약하다는 것도 고정관념일 뿐이다. 미국인이 원래부터 소프트웨어에 뛰어났다는 증거는 없다. 국내에서 안되면 해외 인력으로 눈을 돌리면 된다. 구글의 모토로라 실제 인수까지는 시간이 있다. 전략적 포트폴리오를 잘 짜면 옵션은 오히려 더 많아질 수 있다. 어쩌면 구글이 모토로라의 특허만 갖고 이를 다시 재매각하겠다고 나올지도 모르겠다.

안현실 논설위원 / 경영과학博 a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