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조직법 개정으로 내년부터 판사를 평가하는 기준(근무평정)에 '친절함'이 도입되면서 대법원이 골머리를 앓고 있다. "일부 '막말 판사' 잡으려다 '포퓰리즘 판사' 나오겠다"는 등 일선의 반발이 거센 데다 친절함을 계량화해 인사에 반영할 방법도 마땅치 않기 때문이다.

17일 대법원에 따르면 지난 6월 국회 사법제도개혁특별위원회에서 근무평정 기준으로 △사건 처리율 및 처리 기간 △상소율,파기율 및 파기 사유 △성실성 △청렴성 △친절성 등이 명시된 법원조직법이 통과됐다.

대법원은 내년 1월1일부터 인사에 반영할 근무평정의 구체적 기준 마련에 들어갔다. 근무평정은 판사들의 승진,전보,해외연수에 반영된다.

판사들의 불만은 '친절성 등 주관적인 부분을 어떻게 수치화해 근무평정 기준으로 삼을 것인가'에 집중된다. 대법원도 판사의 친절성을 평가할 때 불만 민원 제기 건수를 따질 것인지,설문조사 등 외부 평가를 받아야 할 것인지,큰 문제가 없을 경우 문제 삼지 않는 선에서 정리할지 가닥을 잡지 못하고 있다.

대법원 관계자는 "일단 법원조직법에 조항이 생겼으니 규칙안을 마련해야 한다"며 "성실성이나 청렴성은 그렇다 쳐도 친절성 평가 기준을 명확하게 다듬는 작업은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일선에서는 "눈치 보는 판사가 늘어날 것"이라는 우려를 제기한다. 서울중앙지법의 한 판사는 "패소한 당사자나 변호사가 악성 민원을 제기할까봐 판사들이 위축될 수밖에 없다"며 "판사는 법정에서 소란을 피우는 행동을 제지하는 '악역'을 하며 다른 당사자들의 권익을 보호해줄 의무가 있는 거 아니냐"고 주장했다.

다른 근무평정 기준도 논란거리다. 사건 처리율,사건 처리기간,상소 · 파기율은 수치화할 수는 있어도 평가 기준으로 삼으면 부작용이 생길 거라는 예측 때문이다.

검사 출신 한 변호사는 "사건 처리율을 높이고 사건 처리기간을 줄이려고 판사들이 충분한 심리 없이 '밀어내기식 판결'을 할 부작용이 있다"고 말했다. 한 판사는 "키코 등 복잡한 사건을 맡은 재판부는 사건 처리기간 등에서 불리해져 형평성에 어긋날 수도 있다"며 "파기 여부도 대법원 판결 확정까지 수년간 기다려야 확정지을 수 있는 사안이라 바로 그해 인사에 반영하기는 무리"라고 지적했다.

이고운 기자 cca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