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구글의 모토로라 인수에서 보여지듯 실리콘밸리를 중심으로 한 미국의 정보기술(IT) 분야 인수 · 합병(M&A) 시장은 점점 가열되고 있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주춤했던 미국 내 M&A 규모는 다시 가파른 상승세를 탔고 그 중심에는 글로벌 기업과의 합종연횡을 꿈꾸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모바일 앱,융 · 복합 산업 분야의 신예 벤처기업들이 자리하고 있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전혀 다른 질감의 공기가 팽배하다. 얼마 전 뽀로로의 1조원대 월트디즈니사 매각제안설이 화제가 됐다. 사실 여부는 불분명하지만 디즈니의 제안을 거부했다는 뽀로로 제작사의 설명에 네티즌들은 '토종 대표 캐릭터를 지켰다'며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반면에 최근 국내 소셜커머스 1위 기업인 티켓몬스터가 해외 기업에 매각되자 '먹튀'가 아니냐는 비난이 일기도 했다. 티켓몬스터는 2010년 5월 설립 이후 1년 만에 매출액이 1000억원을 돌파하는 등,세계 최대 소셜커머스 기업인 그루폰에 맞서 국내 1위를 지키고 있는 토종업체로 유명하다. 국내 기업이 미래성장 업종인 소셜커머스 분야에서 단기에 급성장해 세계적 기업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데서 자부심을 느끼던 국민 정서를 고려할 때 서운한 감정을 갖는 것도 충분히 이해는 된다. 하지만 국내 벤처기업의 척박한 M&A 토양을 현실로 직시할 때 '먹튀매각'이라는 일각의 주장이 과연 온당한 것인지,중장기적으로 국익에 바람직한 것인지에 대해선 생각해 볼 여지가 있다.

벤처 창업을 통해 수많은 혁신적인 아이디어가 싹트고 가능성이 현실화될 수 있으려면 혁신기업가에 대한 엔젤 등 초기투자자들의 투자가 활발하게 일어나야 한다. 자금을 회수할 수 있는 수단이 없다면 투자시장이 형성될 리 없다. 한국의 벤처 회수시장 현실은 한마디로 척박하다.

기업공개를 통한 회수의 경우 코스닥상장까지 평균 11년이 소요된다. 그마저도 연간 10여건에 불과하다. 선진국에서는 기업간 M&A가 주요 투자회수 수단으로 자리매김했다. 미국의 경우 투자회수 경로로 M&A가 89.2%를 차지하고 있는데 우리의 경우는 7.1%에 불과한 실정이다.

M&A는 시장 확대와 기술혁신의 수단으로 긍정적인 효과가 더 크다. 달리기 시합에 비유하자면,스타트 구간에서 단거리에 뛰어난 선수가 100~200m까지 최선을 다해 달려가다 중거리 구간에서 체력이 소진되면 더 나은 플레이어에게 바통을 넘겨주고,이어 마무리는 전력질주로 최적화된 선수가 이어받아 우승 테이프를 끊는 것과 같다. 미국의 경우 이런 일이 당연하게 이해되는 반면 우리의 경우 내가 응원하던 처음 주자가 끝까지 완주해서 우승하지 않으면 아쉽다고 느끼는 것이다.

벤처정책에서도 이성적으로는 벤처기업 M&A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면서도,정작 우리 기업이 해외에 M&A 되면 아쉬워하며 비판하는 경향이 있다. 벤처 선진국인 이스라엘의 경우 인터넷 1세대가 20대 초반에 설립한 ICQ가 1998년 미국 아메리카온라인에 4억7000만달러에 매각될 때 전 국민이 환호했고 창업자들은 영웅이 됐다. 창업자들은 그 자금을 바탕으로 벤처캐피털을 설립했고 투자를 이어나가 지금의 '창업국가' 이스라엘의 씨앗을 뿌렸다. 그 후 이스라엘에선 국민들이 창업자의 길로 적극 나서게 되는 창업붐이 일어났고,이런 우호적 M&A 환경이 오늘날의 이스라엘을 있게 했다.

우리도 성공한 기업가들이 재창업용 자금으로 벤처 생태계 발전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국민이 긍정적 관심을 가져야 될 때이다. 미국의 엔젤투자 사례와 같이 M&A 매각대금을 기업가정신으로 충만한 창업자들이 초기 벤처기업에 재투자용으로 적극 활용한다면 제2,제3의 '티켓몬스터'가 발아하는 토양을 조성해 더 좋은 결과가 나올 수 있다. M&A는 벤처생태계의 숲을 중장기적으로 울창하게 하고 토양을 비옥하게 해주는 숲가꾸기에 비유된다. 이제 우리도 해외매각을 포함한 제반 벤처기업 M&A에 대해 새로운 시각으로 사고의 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다.

김동선 < 중소기업청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