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병이 깊어지고 있다. 그리스 포르투갈 등을 덮은 재정위기의 그림자가 독일 영국 프랑스를 덮치더니 이젠 동유럽 국가로 확산되는 양상이다. 동유럽 국가의 2분기 경제성장률이 일제히 하락,유럽의 재정위기에 심각한 영향을 받고 있다는 게 입증됐다.

16일 긴급히 만난 독일과 프랑스 정상들은 기대했던 위기 해법을 내놓지 못했다. 유로존 공동위원회를 창설,유럽 경제정부를 만들자고 제안했으나 각 국가의 이해가 달라 논란이 예상된다.

◆남(南)에서 서(西)로, 다시 동(東)으로

폴란드 체코 헝가리 등 동유럽 국가들이 미국과 유럽의 재정위기에 직격탄을 맞았다. 미국과 유럽이 재정위기로 경기침체에 빠지면서 수출 중심의 경제구조를 갖고 있는 이들 나라에 문제가 생겼다. 체코의 2분기 국내총생산(GDP) 증가율은 2.4%로 1분기 2.8%에 비해 낮아졌다. 헝가리의 2분기 GDP 증가율은 1.5%로 전 분기 2.5%에 비해 크게 하락했다. 씨티은행은 폴란드의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4.2%에서 3.9%로 낮춰 잡았다.

스위스프랑의 강세도 골칫거리다. 폴란드 헝가리 등에서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불거지기 이전에 비교적 금리가 낮은 스위스프랑 대출을 쓰는 게 유행이었다. 그러나 스위스프랑 가치가 급등,대출받은 사람들의 부담이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선진국들도 마찬가지다. '나홀로 호황'을 누리던 독일마저 본격적인 경기침체에 들어갔다는 진단이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독일의 대중국 수출이 7월 들어 2분기 평균 대비 11% 감소했다고 17일 보도했다. 조 케제르 지멘스 최고재무책임자(CFO)는 "과열됐던 신흥국의 경기가 식고 있어 경제호황기는 끝난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영국의 2분기 GDP 증가율은 0.2%였다. 지난해 4분기 -0.5%에서 올해 1분기 0.5%로 반등했으나 2분기 들어 성장세가 다시 둔화됐다. 프랑스는 2분기 GDP 증가율이 제로(0%)였다. 스페인과 이탈리아의 GDP 증가율은 각각 0.2%,0.3%였다.

◆獨 · 佛 "단일 경제정부 창설하자"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와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은 16일 회동에서 유로본드 도입에 합의하지 못했다. 유로존(유로화 사용 17개국) 공동 채권을 발행할 경우 일부 재정위기국들도 상대적으로 낮은 금리에 시장에서 자금을 조달할 수 있다. 하지만 이들이 상환을 못하면 독일 등이 부담을 짊어져야 한다는 우려가 있다. 사르코지 대통령은 "유로본드는 유럽이 완전히 통합된 다음에야 도입할 수 있으며 통합 초기인 지금은 적절한 시기가 아니다"고 말했다.

대신 두 나라 정상은 유로존 재정위기 해소 방안의 일환으로 '유로존 공동경제위원회' 창설을 제안했다. 사르코지 대통령은 "유로존을 관리하는 진정한 단일 경제정부를 창설하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두 정상은 이 위원회 의장으로 헤르만 반롬푀이 유럽연합(EU) 정상회의 상임의장을 추천했다. 유로존 17개 국가가 2012년 중반까지 균형예산을 헌법으로 채택할 것도 요구했다.

두 나라 정상은 공동 법인세 도입에도 합의했다. FT는 두 나라 재무장관이 세율을 포함해 2013년부터 공동 법인세를 발효시키는 방안을 내년 초 입안할 것이라고 전했다.

이태훈 기자 bej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