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 칼럼] 3년 만에 되살아난 2008 금융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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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로 인한 재정 악화가 원인…월街 개혁여지 없는 게 더 문제
미국 국가채무의 원인은 무엇인가. 지난 부시 정부 때의 중동전쟁과 감세도 큰 원인이지만,직접적 원인은 2008년 금융위기다. 불황으로 인한 세수 감소와 수요 진작을 위한 재정정책이 재정적자를 엄청나게 늘려놓은 것이다. 이것은 유럽도 마찬가지다. 그리스를 제외하고 포르투갈 스페인 아일랜드 등 모두 2008년 위기 때문에 재정이 결정적으로 악화됐다.
결국 미국과 유럽의 재정 문제는 따지고 보면 금융 문제다. 따라서 재정 문제의 본질을 파악하려면 2008년 금융위기가 일어난 원인과 그에 대한 책임을 분석하는 것이 먼저다. 위기가 재발하지 않도록 개혁조치를 취하는 것도 물론 중요하다.
그런 점에서 이번 미국 신용등급 강등은 역설적이다. 신용등급을 강등한 신용평가사 자체가 지난 위기에 책임이 있기 때문이다. 신용평가사는 사전적으로 우량 등급을 남발하고는 부실이 드러난 뒤 뒷북을 치는 바람에 위기를 키우는 데 큰 몫을 했다. 증권에 신용등급을 부여하는 대가로 그것을 발행하는 금융회사로부터 수수료를 받고 그 회사에 자문을 했으니,도덕적 해이가 없었다고 할 수 없다.
당연히 신용평가사는 위기 후 '개혁 대상'으로 인식돼 왔다. 그래서 지난해 통과된 미국의 도드-프랭크 금융개혁법에는 신용평가사의 부실 평가에 대해 민사상 책임을 물을 수 있게 하고,증권발행 기관이 아니라 증권거래위원회가 신용평가사를 선택할 수 있게 하는 조항이 포함됐다. 이런 이유로 이번 신용등급 강등의 바탕에 신용평가사가 미국 정부와 정치권에 반격을 하려는 의도가 깔려 있다고 보는 견해도 있다. 물론 신용평가사는 펄쩍 뛰지만,도드-프랭크 법이 통과된 이후 그것을 무력화하려는 시도가 광범위하게 이뤄져 왔다는 점에서 완전한 억측이라고 보기도 어렵다. 실제로 도드-프랭크 법을 무력화시키기 위해 미국 금융계가 쓴 로비자금이 5000여만달러라고 한다.
재정 문제 해결에 있어서도 그렇다. 금융위기가 재정 문제의 근본원인이라면 위기를 일으킨 금융부문에 부담하게 하는 것이 공정하지 않은가. 위기 발생 시 들어가는 비용을 부담하게 해야 할 뿐 아니라,금융시장에서 투기로 떼돈을 번 자산가들이 근로소득자보다 훨씬 낮은 세율을 적용받는 현실을 고쳐야 할 것이다. 그러나 금융자산가 중에는 그런 주장을 펴는 사람들보다 세금을 적게 내려고 로비하는 사람이 훨씬 많은 것이 현실이다.
매일 수조달러씩 거래되는 외환시장도 있다. 거기에 조금씩만 과세해도 엄청난 세수가 생길 것이다. 그것이 시장을 왜곡해서 비효율을 초래한다고 볼 수도 없다. 오히려 '과속으로 돌아가는 외환시장의 수레바퀴에 모래를 조금 끼얹음으로써' 효율성을 올릴 수도 있다. 외환위기를 방지하는 데도 도움이 된다. 그런데도 미국의 금융계뿐 아니라 정부도 그런 것은 꿈도 꾸지 말라는 식이다.
이 모든 것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인가. '대공황 이후 최대 위기'를 일으킨 당사자들이 아직 너무나 강력하다는 것이다. 당연히 앞으로 개혁이 실현되는 것도 만만치 않다. 월가의 막강한 힘에다 규제와 세금에는 무조건 반대하는 공화당,거기에 기대 이하의 리더십을 보이는 오바마 대통령의 모습이 모두 그런 느낌을 갖게 한다. 이것은 1930년대 대공황 때 루스벨트 대통령의 강력한 리더십 아래서 뉴딜정책으로 광범위한 개혁이 이뤄진 것과는 물론 비교도 안 된다. 그런 한편 아직은 나뉘어 있는 유럽에서 세계금융체제를 개혁하는 리더십이 나오기도 어려운 실정이다.
금융을 발원지로 하는 세계경제의 불안정성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문제는 그에 대처하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기 위한 개혁 능력이 있느냐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지금 세계는 불안하기 짝이 없는 쪽으로 가고 있는 것 같다.
이제민 < 연세대 경제학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