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이 아닌 곳에선 살아본 적이 없어 걱정을 했죠.막상 와보니 서울에 남았더라면 지금처럼 만족스러울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예요. " 지난해 말 6년간의 미국 생활을 마치고 한국에 돌아온 김규영 씨(37)는 8개월간의 서산 생활을 이같이 말했다.

미국 버지니아공대에서 석 · 박사를 마친 남편 이민재 과장(39)이 귀국해 충남 서산에 본사가 있는 삼성토탈에 입사하겠다고 했을 땐 깜짝 놀랐다고 했다. 미국 유학파가 7살,5살짜리 아들 둘을 데리고 들어보지도 못한 서산이란 시골에서 살 생각을 하니 앞이 캄캄했다. 아직 어리긴해도 아이들 교육이 무엇보다 걱정이었다고 했다.

◆Home+Company=홈퍼니 경영

웬만한 스펙을 갖춘 우수인재 사이엔 '수원 벨트'라는 말이 있다. 수원 남쪽에 있는 지방 사업장은 기피대상 1호다.

석유화학업체 삼성토탈이 유학파까지 서산으로 불러 올 수 있는 비결은 뭘까. 이 회사는 2009년부터 임직원 가족이 참여하는 각종 동아리를 운영하고 회사(company)와 가정(home)의 유기적 결합에 힘쓰는 홈퍼니 경영을 도입했다.

사원 아파트 단지 한가운데 자리한 상가를 리모델링,교육문화센터로 바꿔 도서관,독서실,동아리방 등 문화공간을 마련했다. 사진 촬영,문화유산 답사,음식,원예,컴퓨터 자격증 등 각자의 취미에 따라 모인 직원 가족들이 언니,동생으로 친해지자 남편들의 업무 만족도도 높아졌다.

손석원 삼성토탈 사장은 "가정이 안정되면 기업 생산성도 자연스럽게 올라가게 돼 있다"며 "가족들의 문화체험 등 각종 지원에 들이는 돈은 1년에 3억원 정도에 불과하지만 효과는 300억원 이상"이라고 말했다.

◆지방사업장 인재 확보 모델

2006~2008년 3년간 13명에 그쳤던 국내외 석 · 박사 인력 유치는 홈퍼니 경영 도입 후부터 올 8월까지 2년8개월간 29명으로 두 배 이상 늘었다.

지난해 여름 미국에서 스카우트된 유연식 차장(39)은 "홈퍼니 경영이 입사 결정에 큰 영향을 끼쳤다"고 말했다. 지난해 피츠버그대에서 박사과정을 마치고 입사한 촉매연구팀의 박정현 과장(36)은 올해 같은 대학에서 공부하고 귀국한 아내 조효순 씨(35)에게 입사를 권유,다음달부터 부부가 함께 회사를 다니게 됐다.

'아이비스쿨'이라고 이름을 붙인 중 · 고생을 위한 공부방은 석 · 박사를 비롯한 명문대 출신 직원 10여명이 학습 지도와 진로상담을 맡으며 효과가 나타나고 있다. 개원 전인 2009년 3월과 비교해 중 · 고생들의 평균 수강 학원 숫자는 2개에서 0.6개로 감소했다. 40만원이던 1인당 사교육비도 18만원으로 줄었다는 게 회사 측 설명이다. 교육 문제 때문에 서울에 떨어져 지내다 서산으로 옮겨오는 가족들도 생기고 있다. 회사 측에 따르면 학원비와 독서실비,소그룹 스터디 비용 등을 고려했을 때 가구당 절감액은 한 해 700만원에 이른다.

한 직원 부인은 "결혼 후 10여년을 집에만 있으면서 잃어버렸던 나를 서산에 와서 다시 찾은 느낌"이라고 했다.

서산=조재희 기자 joyja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