南보헤미안 흔적 가득한 중세마을…눈길 닿는 곳마다 '동화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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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코 체스키크룸로프
형형색색 체스키크룸로프城, 하늘보다 푸른 블타바강, 햇살보다 따뜻한 오렌지색 지붕
1992년 유네스코 유산 지정
형형색색 체스키크룸로프城, 하늘보다 푸른 블타바강, 햇살보다 따뜻한 오렌지색 지붕
1992년 유네스코 유산 지정
체코 프라하에서 기차를 타고 남쪽으로 달린 지 3시간.빛바랜 오렌지색 지붕들과 야트막한 언덕,블타바강이 감싸고 있는 마을이 눈앞에 펼쳐졌다. 중세와 르네상스 시대의 거리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이곳은 1992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된 체스키크룸로프다.
유럽인들의 여름 쉼터로 유명한 이 마을의 골목 사이를 하루 종일 걷는 것만으로도 즐겁다. '크룸로프'는 독일어로 구불구불한 모양의 강 옆에 있는 풀밭이라는 뜻.15세기 '체코의'를 뜻하는 '체스키'가 더해져 마을 이름이 됐다. 13세기부터 만들어진 이 도시는 수백년간 남보헤미아 영주들의 영향을 받은 건축물과 미술품을 보존해왔다.
◆고딕에서 바로크까지 멋진 건축물들
체스키크룸로프역에서 도보로 20분.골짜기 사이로 블타바강이 에워싼 구시가가 보이기 시작했다. 골목마다 깔린 닳고 닳은 회색 돌이 세월의 흔적을 말해준다. 낯선 곳에서 길을 잘 잃어버리는 '길치'도 이 마을에서는 걱정할 필요가 없다. 프라하성에 이어 체코에서 두 번째로 큰 체스키크룸로프성이 구시가 중심에 우뚝 서 있어 이정표 역할을 한다.
체스키크룸로프성에 먼저 올랐다. 화려하게 채색된 건물 외벽이 눈을 사로잡는다. 권위있고 화려하기보다는 우아하고 아름다운 여왕이 살고 있을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13세기 초반 영주 크룸로프가 세운 이 성은 14세기 보헤미아의 대귀족 로젠베르크가의 소유가 된 뒤 서쪽으로 폭을 넓혀 언덕까지 뻗어나갔다. 지금은 5개의 안뜰과 서쪽의 광대한 정원을 갖고 있는 대궁전이 됐다.
성 안은 고딕,르네상스,바로크,로코코 양식으로 꾸며져 있어 오랜 역사를 그대로 보여준다. 영어 가이드가 딸린 투어를 택하면 성의 예배당과 바로크 살롱,가면 무도회의 방을 도는 루트 1과 슈바르첸베르크가의 초상화 갤러리,인테리어,미술품을 보는 루트 2를 택할 수 있다.
해질 무렵 성내 투어를 마치고 제2정원 모퉁이에 있는 탑에 올랐다. 마을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전망에 가슴이 확 트인다. 블타바강에서 카약을 즐기는 사람들,오렌지색 지붕과 푸른 숲이 파란 하늘과 어우러져 장관을 이룬다.
◆에곤 실레의 어머니가 태어난 마을
성에서 빠져나와 나무로 만든 라제브니키 다리를 건너 스보르노스티 광장으로 향했다. 유유히 흐르는 블타바강 줄기를 따라 노천 카페가 즐비하다. 낮부터 여유롭게 커피와 맥주를 즐기는 사람들.햇살을 즐기며 카약을 타는 젊은이들을 배경으로 카페에 앉아 이곳의 하우스맥주인 에겐베르크로 목을 축였다. 때마침 들려오는 성당의 종소리와 햇살을 머금어 반짝이는 강물이 평온함을 더한다.
시로카 거리 쪽으로 조금 걸으면 뜻밖의 인물과 마주친다. 28세에 요절한 천재 화가 에곤 실레다. 그의 주 활동무대는 오스트리아 빈이었고,체스키크룸로프는 그의 어머니가 태어난 곳.자주 머물며 많은 작품을 남긴 이곳에는 에곤 실레 문화센터가 자리하고 있다. 그의 작품을 가장 많이 만날 수 있는 빈에 있는 레오폴트미술관보다 더 인간적이고 소박한 모습의 에곤 실레를 볼 수 있다.
뒤틀리고 왜곡된 자아와 성을 주제로 한 드로잉 작품으로 더 유명한 그이지만,클림트를 동경했던 시기의 풍경화도 아름다운 색감과 구성으로 감탄을 자아낸다. 문화센터 내 갤러리에서는 실레의 유년기 사진과 편지들,데드 마스크를 만날 수 있다. 무엇보다 그의 풍경화들의 배경이 된 이곳에서 화가의 눈으로 마을을 바라보는 특별한 경험을 할 수 있다.
굽이쳐 흐르는 강에서는 해마다 10월에 카약선수권대회가 열린다. 7~8월에는 올해로 20주년을 맞은 체스키크룸로프 음악페스티벌도 열린다. 낮에 여유롭게 걷는 일정을 즐기다 밤에는 언덕 위의 음악당에서 둥근 달을 벗삼아 콘서트를 즐기는 것도 괜찮겠다.
◆ 여행팁
프라하에서 체스키크룸로프로 가려면 체코 중앙역에서 기차를 타는 것이 가장 좋다. 체스케부데요비체역까지 2시간을 달린 뒤 이곳에서 지방선으로 갈아타고 1시간20분가량 더 가면 체스키크룸로프역에 도착한다. 프라하에서 매일 3~5회 출발하는 버스로 체스케부데요비체를 경유해 3시간 정도 가는 방법도 있다. 숙박 시설은 저렴한 게스트하우스에서 중세풍 인테리어의 호텔까지 다양하다. 체스키크룸로프에선 강에서 건져 올린 잉어와 송어 등 민물고기 요리가 별미다. 블타바 강변의 노천 카페에서 라이브 음악에 취해보는 것도 놓치지 말 것.
체스키크룸로프=김보라 기자 destinyb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