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 3세의 커리어 관리","치기어린 돈놀이"

구본웅 하버퍼시픽캐피털 대표(32 · 사진)가 2009년 미국 스탠퍼드대와 같은 대학 경영대학원(MBA)을 졸업하고 실리콘밸리에 벤처캐피털(VC)을 설립했을 때 한인 투자자들 사이에서는 이 같은 말들이 흘러나왔다. 하지만 그가 미국,중국 등의 대형 LP(출자기관)들을 돌며 4000만달러 규모의 펀드 자금을 유치하고 숨은 벤처기업들을 발굴해나가자 그를 보는 시각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금융위기 여파로 그해 하반기 실리콘밸리 지역에서 결성이 완료된 펀드는 4개에 불과했고,신생 VC 중에는 하버퍼시픽캐피털이 유일했다. 중화권 최대 부호인 리카싱,골드만삭스의 아시아 총괄 책임자인 팀 라이스너 등 굵직굵직한 투자자들이 그에게 돈을 맡겼다.

구 대표는 21일 한국경제신문과 인터뷰를 갖고 "연내 5억달러 규모의 사모펀드(PEF)를 결성해 투자 기업을 확대해 나갈 계획"이라며 "잠재력을 가진 실리콘밸리 벤처 기업,글로벌 시장 진출을 노리는 아시아 기업을 발굴한 뒤 상호 협업을 유도하고 이를 통해 가치를 높여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경쟁력 있는 한국 벤처기업들을 찾아 미국 시장에 진출할 수 있도록 길을 터나가겠다"고 덧붙였다.

구 대표는 LS그룹 구자홍 회장의 외동아들이다. 하지만 유학을 마친 뒤 귀국 대신 현지에 남아 대학원 동기들과 창업을 택했다. 그는 "지금 실리콘밸리는 융 · 복합 산업의 전장(戰場)으로 바뀌고 있다"며 "진화의 한복판에서 기회를 찾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그가 실리콘밸리 벤처와 아시아권 기업 간 가교 역할에 관심을 가진 것은 대학원 시절 리서치 회사에서 현지 정보기술(IT) 기업을 관찰하면서부터다. 그는 당시 주목받기 시작한 청정기술(clean tech) 등 융 · 복합 기술 분야 기업들을 연구했고 아시아 기업과 실리콘밸리 기업의 파트너십을 통해 가치를 끌어올릴 수 있다는 판단을 내렸다. 이를 위해 아시아 시장에서 경쟁력을 가질 수 있는 실리콘밸리 기업을 찾아나섰고 한국과 중국 등에서도 글로벌 시장에서 통할 만한 회사들을 발굴했다. 그는 투자 대상 기업으로 독창성을 가진 기업,복합적 시장을 가진 기업,기술적 난제를 해결한 기업을 꼽았다. 1차 펀드에서는 8개 실리콘밸리 벤처와 3개의 한국 벤처,1개의 중국 벤처기업에 각각 투자했다.

그는 "특히 한국 벤처기업들 중에는 글로벌 시장에서 통할 만한 독창적 아이템과 기술력을 갖고 있는 곳이 적지 않다"고 평가했다. 구 대표는 최근 투자한 게임업체 블루페퍼를 예로 들며 "게임 캐릭터와 음악 등을 사용자가 직접 만드는 등 사용자 중심 게임은 세계 어디에서도 찾기 힘든 모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한국은 과거 판도라TV,싸이월드,다이얼패드 등의 비즈니스 모델을 먼저 만들었지만 결국 유튜브,페이스북 등 글로벌 인터넷 기업들에 최후 승자 자리를 내줬다"며 "최근 한국의 젊은 창업자들은 초기부터 글로벌 마인드를 갖고 세계 시장을 노리고 있어 과거와는 다른 결과를 낳을 수 있다"고 전망했다.

고경봉 기자 kgb@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