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산수화 디자인을 만들 때부터 '다음 작품 소재는 단청'이라고 생각했어요. "

10여년 동안 뉴욕 · 파리 컬렉션에 참가해온 한국의 대표적 패션디자이너 이상봉 '이상봉' 대표(사진)는 21일 내년 봄 · 여름을 겨냥한 컬렉션 작품을 이렇게 소개했다. 그의 작품은 예로부터 내려오는 단청(丹靑 · 목조건물에 빨강 파랑 등 여러 가지 빛깔로 그린 전통무늬)의 디자인과 '오방색'(청 · 적 · 백 · 흑 · 황)을 활용해 만든 옷이다. 그는 "경복궁에 얽힌 역사,디자인 그리고 '나 가거든'(소프라노 조수미 씨 노래)에서 영감을 받아 만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대표는 내달 9일 뉴욕 링컨센터에서 열리는 뉴욕컬렉션의 '컨셉트코리아'에 10점의 단청 작품을 공개할 예정이다. 컨셉트코리아는 문화체육관광부와 콘텐츠진흥원이 공동 후원하는 글로벌 패션 프로젝트다. 국내 디자이너 중 선발된 총 5개팀이 참가한다. 내달 말 파리컬렉션에서도 단청으로 디자인한 그의 새 작품 40점가량이 전시된다.

지난해 이 대표의 디자인이 블랙 · 화이트 등 무색의 수채화였다면 이번엔 찬란하고 화려한 색의 향연이 특징이다. 그는 "단기간에 급성장한 한국 사회의 발전상과 동시에 암울했던 역사적 배경도 함께 녹인 것이 바로 단청을 모티브로 한 이번 작품"이라고 강조했다. 그래서 선명한 오방색뿐 아니라 바랜 듯한 원색도 썼다. 물고기 비늘처럼 하나씩 갈라지는 소재로 원피스를 만들어 '흥망성쇠'를 모두 느낄 수 있게 했다.

최근 유행처럼 번지고 있는 '협업' 열풍에 대해 그는 '열린 자세'라고 언급했다. 스웨덴 제조직매형 의류(SPA · 패스트 패션) 브랜드 H&M이 지미추,랑방,베르사체 등 명품 브랜드와 손잡는 등 저렴한 기성복 브랜드와 고가의 디자이너 브랜드 간 협업은 최근 트렌드다. 그는 "패스트 패션은 고급스러운 이미지와 디자이너의 감성이 중요하고,디자이너는 대중과의 호흡이 필요하기 때문에 서로 필요에 의해 만나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라며 "기회가 되면 기성복을 만드는 대기업과 협업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지금까지 한글 한복 등에서 착안한 현대적 감각의 옷을 만들어왔듯 앞으로도 우리나라 전통을 새롭게 되살리는 일을 하겠다고 했다. 이 대표는 "글로벌 무대에서 저의 경쟁력은 그들이 갖고 있지 않은 걸 만드는 점"이라며 "우리의 전통 무늬와 역사를 옷으로 만드는 건 아주 어렵기 때문에 작품을 만들기 전 고민하는 데만 절반의 시간을 쓰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디자이너를 꿈꾸는 후학들에게 그는 "실력만 갖추면 한국 디자이너도 충분히 글로벌 명품 브랜드를 키울 수 있는 시대가 왔다"며 "조바심을 갖지 말고 뿌리부터 단단하게 키우라"고 조언했다. 앞으로 포부를 묻자 "내 이름을 걸고 오트쿠튀르(haute couture · 전 세계 트렌드를 주도하는 맞춤복 패션쇼 또는 고급 의상점)를 해보고 싶다"고 답했다. '이상봉' 하면 떠오르는 디자인으로 10벌이든 20벌이든 작품을 만들어 소수 고객들에게 선보이고 싶다는 것.올가을에는 자신의 작품세계를 담은 '이상봉'이라는 제목의 아트북도 출간할 예정이다.

민지혜 기자 spo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