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세훈 서울시장의 '투표 불성립시 사퇴' 결정에는 투표가 무산되면 민주당 등 야당의 기세에 밀려 남은 시장직을 정상적으로 수행하기 어렵다는 위기감이 깔려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오 시장은 지난 20일 당 · 정 · 청 수뇌부가 모인 국가현안조정회의에 참석해 최종적으로 시장직을 걸겠다는 결심을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홍준표 한나라당 대표는 21일 기자회견 직전 오 시장에게 전화를 걸어 시장직 연계를 만류했다. 오 시장이 사퇴하면 10월에 서울시장 보궐선거를 해야 한다는 부담 때문이었다.

하지만 오 시장은 당의 강력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주민투표와 시장직 연계'라는 벼랑 끝 전술을 선택했다.

오 시장은 기자간담회 직전 참모들에게 "시장직을 거는 것이든,안 거는 것이든 어떤 결정을 하더라도 회견문 문안은 내가 알아서 쓰겠다"며 "그 결정에 따라달라"고 말해 시장직 연계에 대한 굳은 의지를 보였다고 한다.

오 시장의 결정은 내년 총선은 물론 대선 국면에까지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우선 오 시장의 바람대로 투표율이 33.3%를 넘어 서울시의 단계별 무상급식이 채택된다면 오 시장뿐 아니라 수도권에서 열세를 면치 못하고 있는 여권까지 향후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유리한 고지를 선점할 수 있다.

한나라당의 전통적 지지기반인 보수층 결집의 신호탄이 될 수 있고,상대적으로 무상급식으로 똘똘 뭉쳤던 진보진영은 일단 제동이 걸릴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다.

오 시장은 민주당이 장악하고 있는 서울시 의회와의 관계에서도 주도권을 잡아 시정에 힘을 받을 수 있다. 또 오 시장은 정치적 결단을 통한 리더십을 검증받게 돼 향후 대권구도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할 수 있게 된다.

하지만 주민투표에서 투표율이 33.3%를 넘지 못한다면 상황은 정반대가 된다. 우선 한나라당은 10월 보궐선거를 앞두고 혼란에 빠질 가능성이 높다.

당 지도부가 주민투표 지원을 놓고 분열상을 보였고,친박계가 주민투표에 비협조적이라는 지적이 나온 터라 계파 갈등이 재연될 수도 있다.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나설 후보를 선정하는 과정에서도 내홍에 휩싸일 가능성이 높다. 민심 이반을 다시 확인한 상황에서 누가 후보로 나서겠느냐는 것이다.

내년 총선과 대선도 비상이다. 서울지역 의원들은 지역구 지자체장을 대부분 민주당에 넘긴 데 이어 시장까지 민주당에 넘겨줄 경우 지역 현안과 관련한 실무협조가 안 돼 총선에서 고전할 수밖에 없다. 한나라당 차기 대선후보도 최대 승부처인 서울에서 고전을 면치 못할 가능성이 높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이명박 정부의 레임덕이 더욱 빨라질 것이라는 얘기도 나온다.

오 시장이 당과 사전 협의 없이 주민투표를 실시하고,더 나아가 시장직까지 연계시킨 상황에서 청와대가 측면지원을 한 모양새가 돼 선거 패배의 불똥이 청와대로 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어서다.

구동회 기자 kugij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