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중은행들이 기존 대출의 상환을 적극 독려해 가계대출 증가율 억제에 나서기로 했다. 또 월별 가계 대출 증가율은 '전월 대비 0.6%'라는 획일적인 기준이 아니라 자금 수요에 따라 유연하게 관리하기로 했다.

21일 금융계에 따르면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은 지난 19일 시중은행 부행장들을 소집해 이 같은 방향으로 가계 대출 증가 속도를 조절해 나가라고 지시했다. 금융위 관계자는 이 자리에서 "전면 대출 중단과 같은 조치는 바람직하지 않다"며 "처해 있는 상황에 차이가 있는 만큼 은행별로 합리적인 대책을 만들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당국 · 은행,유연하게 대처하기로

이날 회의에서 금융위는 연간 가계 대출 증가율을 명목 국내총생산(GDP) 증가율 수준인 7.3%에서 관리하는 큰 틀의 정책 방향엔 변함이 없다고 재확인했다. 다만 은행들이 7.3%를 12등분해 월별로 약 0.6%씩 증가율을 엄격하게 관리하면 서민 등 대출 수요자들이 금리가 높은 2금융권으로 몰려 오히려 가계부채 위험성을 가중시킬 수 있다고 지적했다.

금융위 관계자는 "일부 은행이 8월 들어 가계 대출을 1% 가까이 늘려 놓고 대출을 중단하는 것은 무책임한 처사"라며 "앞으로는 중장기 월별 계획을 미리 세워 유연하게 대처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대출 수요가 많은 달엔 증가율이 0.6%를 웃돌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달에는 그 이하로 관리하라는 얘기다. 금융당국은 아울러 기존 대출 상환으로 마련한 자금은 불요불급한 대출에 사용하라고 요청한 것으로 전해졌다.

◆상환 독려해 잔액 증가 억제

은행들은 이에 따라 상환을 미루는 대출자 등에게 적극적으로 연락해 상환을 유도해 나가기로 하고 세부계획 마련에 나섰다. 독려 대상은 여력이 충분하거나 실수요가 아닌 주식 투자 등을 위해 대출받은 고객이다.

은행들은 또 주식투자용 대출 등의 경우에는 만기 연장을 까다롭게 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신한은행 관계자는 "주택 등을 담보로 마이너스 통장을 만들어 놓고도 거의 쓰지 않는 고객에게 조기 상환을 요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우리은행은 예금담보대출과 주식담보대출의 특별상계를 검토하고 있다. 예를 들어 1년 만기 예금 2000만원을 담보로 1000만원을 빌린 고객에게 예금을 중도 해지해 대출을 상환할 것을 요구하고 대신 나머지 예금 1000만원에 대해서는 1년치 이자를 모두 지급하겠다는 것이다.

◆대출금리 높아질 듯

금융당국은 또 은행들이 특판 및 지점장 전결금리 등을 통해 1~2%포인트 정도 대출금리를 낮게 제공하는 관행도 자제하라고 요구했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우대금리를 적용하는 신규 입주 아파트 집단대출이나 의사 변호사 공무원 등 특정 직업군을 타깃으로 하는 특판상품 판매가 어려워질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은행들은 당국이 사실상 가계대출 총량 규제에 나섬에 따라 대출금리가 높아질 것으로 예상했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우대금리 등이 사라진다면 고객이 부담하는 금리는 다소 높아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한편 지난 17일부터 대부분의 가계 대출을 중단했던 농협중앙회는 비거치식 고정금리 주택담보대출 등은 23일부터 다시 취급하기로 했다. 이신형 농협 여신정책부장은 "비거치식 고정금리 주택담보대출(상품명 채움 고정금리 모기지론)은 다른 대출에 대한 제한과 상관없이 풀어주라는 공문을 각 지점에 발송했다"고 밝혔다.

류시훈/이상은 기자 bad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