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세대가 누린 과잉복지로 아들이 고통 받아서야"
오세훈 서울시장의 말투는 비장했다. 하루 전 기자회견에서 몇 차례 눈물을 보였던 것과 사뭇 대조적이었다. 퍼주기식 무상급식 포퓰리즘을 막기 위해서는 "오세훈이를 연소할 수 있다"고도 했다. 오 시장은 무상급식 주민투표를 이틀 앞둔 22일 저녁 서울시청 시장실에서 한국경제신문과 가진 단독 인터뷰에서 이번 주민투표가 가지는 역사적 의의부터 강조하고 나섰다.

▼지난 21일 기자회견 때 보였던 눈물이 화제입니다.

"무엇이 절 그토록 복받치게 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눈물이 많긴 하지만 평소엔 입술을 꽉 깨물고 참으려고 노력합니다. 그런데 기자회견 당시엔 눈물을 참을 수 없었습니다. 터지면 제어가 잘 안되는 게 눈물인 것 같습니다. 처음엔 참으려 했지만 결국 참지를 못하겠더라고요. "

▼시장직을 내거는 등 '승부수'까지 던졌습니다.

"우리는 역사로부터 항상 많은 것을 배웁니다. 똑같은 잘못을 반복하면 안 된다는 생각을 갖고 있지만 늘상 똑같은 잘못을 되풀이하곤 합니다. 일본이나 미국,유럽의 'PIGS(포르투갈 이탈리아 · 아일랜드 그리스 스페인) 국가' 국민들이 과잉복지로 엄청난 고통을 받고 있는 걸 실시간으로 목격합니다. 아버지대에 누렸던 복지들을 아들대에선 받지 못하는 나라들,아버지대가 누렸던 과잉복지의 대가를 아들들이 치르고 있는 나라들이 많습니다. 이런 모습을 실시간으로 접하면서도 우리 정치권은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습니다. 흔들리는 여야 정치인들을 현명한 유권자들이 막아야 합니다. 정치권의 사탕발림에 넘어가면 안 된다는 걸 국민들께서 보여주셔야만 합니다. "

▼야당과 일부 시민단체에선 주민투표 거부운동을 벌이고 있는데요.

"현명한 국민들의 뜻을 보여주자는 주민투표를 야권과 나쁜투표거부시민운동본부가 막고 있습니다. 진보 진영이 투표 거부와 관련해 논쟁다운 논쟁이 없었다는 건 참으로 슬프고 개탄스러운 일입니다. '정말 민주화 운동을 한 사람들이 맞나'라는 생각까지 들었습니다. 과거에 민주화 운동을 했다는 게 의심스러울 정도로 민주주의에 대한 기본적인 것에 대한 몰이해라고나 할까요. 이런 분들에게도 이번 주민투표를 통해 분명한 메시지를 줘야만 합니다. "

▼지난 12일 대선 불출마 선언을 한 배경은.

"이번 주민투표 발의엔 5개월 만에 80만명이 서명했습니다. 엄청난 열정과 뜻을 담은 서명이 바탕이 돼서 주민투표가 치러지는 것입니다. 이런 숭고한 뜻을 가진 주민투표가 불참운동을 주도하는 진보 진영에 의해 많이 폄하됐습니다. 진보 진영은 주민투표를 오세훈이 대권에 나가기 위한 꼼수라고 폄하했습니다. 유권자들의 숭고한 뜻이 폄하되는 걸 좌시하지 않기 위해 진보 진영 주장의 뇌관을 빼버린 것입니다. 정치인의 행위가 본인의 정치적 욕심으로 오해를 받고 비난의 빌미를 준다면 당연히 개인의 욕심(대선)을 포기해야만 하는 게 맞습니다. "

▼대선 불출마 선언에 이어 시장직 연계 입장까지 밝혔습니다.

"서울시의 복지는 전면 무상급식 실시와 양립할 수 없습니다. 연간 220억원이면 3만가구가 절망에서 희망을 찾아갈 수 있습니다. 기초수급자,차상위계층,노숙자 등을 비롯한 서울의 초빈곤층이 '서울형 복지'인 희망플러스통장 등을 통해 자립하는 길이 열리게 됩니다. (제 주장대로) 초등학교에서 소득 50% 이하 학생들만 무상급식을 실시하면 2500억원을 절감할 수 있습니다. 산술적으로 30만 빈곤가구의 인생을 바꿀 수 있는 재원입니다. 소득 수준과 무관하게 가난한 집과 부잣집 학생들을 똑같이 지원하면 앞서 말한 희망플러스통장과 같은 복지정책을 실시하는 명분과 여력이 사라집니다. 서울시의 복지정책이 무너지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제가 생각하는 비전과 가치가 허물어지는 결과가 오게 되면 가치를 지키기 위해서라도 시장직을 그만둘 수밖에 없습니다. 이번 주민투표에서 서울시가 만들어 왔던 복지체계가 허물어지게 된다면 서울시장에 더이상 머무를 이유가 없다는 뜻입니다. "

▼하지만 시장직 사퇴를 내건 것에 당내에서 반발이 만만치 않았습니다.

"물론 당의 입장을 이해하고 있습니다. 같은 사안을 보더라도 판단이 다를 수 있으니까요. 다만 정치권은 이번 주민주표를 일개 복지정책에 대한 투표라고 보는 것 같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시장직과 연계하는 걸 과하다고 판단한 것입니다. 하지만 이번 주민투표는 원칙과 가치의 문제입니다. 대선에서 승리해야 가치를 지킨다는 게 바로 한나라당 논리입니다. 하지만 원칙과 가치를 지키는 선거를 희생시키면서 총선과 대선을 치르는 게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여야 모두 집권과 표를 위해서 인기영합주의 정책을 내놓고 있습니다. 여야가 표 앞에서 흔들리는 모습을 보이고 있는데 이걸 유권자들이 바로잡을 수 있습니다. 저 역시 1주일 내내 당을 설득해 왔습니다. 이제 당도 그나마 궤도에 오른 것 같습니다. 좀더 시간이 있었다면 대화와 협의를 충분히 했겠지만 투표가 사흘 앞으로 다가와서 좀 무리하게 거취표명을 했습니다. "

▼오 시장의 복지정책은 큰 틀에서 어떻게 정리할 수 있을까요.

"무슨 일이 있어도 소득 수준과 무관하게 동일한 혜택이 주어지는 복지,특히 현금 살포성 복지는 바람직하지 않다고 봅니다. 기초수급자부터 재벌까지 똑같이 5만원을 지급하는 무상급식은 대표적인 '현금 살포성'복지입니다. 중산층 이상은 복지에 동참해야 하는 계층입니다. 앞서 말한 희망플러스통장의 재원은 서울시가 절반,자선단체가 절반을 부담합니다. 자선단체 모금은 사찰 및 교회 등에서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모금한 것입니다. 노블레스 오블리주가 바로 복지에 결합된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복지는 이런 방향으로 가야만 합니다. 진보 진영에선 세금을 냈으니까 소득 차이에 상관없이 똑같이 돌려주는 게 맞다고 하는 데 이건 말도 안되는 논리입니다. 한마디로 속이 시꺼먼 의도를 갖고 있습니다. 바로 중산층의 표를 얻겠다는 것입니다. "

▼한때 정치와 거리를 두려는 것처럼 보였습니만 요즘은 정치와 더 가까워지는 것 같은데요.

"(정치적으로 가고 있다는 게) 맞는 얘기입니다. 전 시장으로서 조용히 일하는 걸 덕목이라고 생각해 왔습니다. 부드럽고 합리적으로 일을 처리하는 걸 좌우명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번 무상급식을 놓고 좀 시끄러워졌습니다. 물론 제 개인적으로도 '따뜻하고 합리적인 보수이미지'가 크게 훼손됐습니다. 하지만 전 상관없습니다. 역사 앞에만 떳떳하면 됩니다. 10년이나 30년 후에 복지광풍을 한 정치인이 나서서 막아냈다는 평가를 받으면 더할 나위없이 좋습니다. 이걸 막지 못했더라도 '기관차처럼 달리는 복지광풍을 당랑거철(螳螂拒轍)처럼 막아선 정치인이 우리 역사 속에 한 명이 있었다'는 사실이 역사 속에 남는 것으로도 족합니다. "

▼정치권에서 표를 의식한 포퓰리즘적인 정책이 난무하고 있습니다.

"정치인들은 선거가 다가오면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 선거를 앞두고 모두 자기세뇌를 합니다. 무리한 정책을 내놓더라도 자기 합리화를 할 수밖에 없다는 얘기입니다. 다른 국가들이 수렁에 빠져드는 걸 보면서도 과오를 되풀이하고 있습니다. 이걸 막아낼 수 있는 사람은 유권자뿐입니다. 주민투표를 계기로 우리 사회의 복지 담론이 일대 전환점을 맞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번 주민투표를 위해 저 오세훈을 연소하고자 합니다. "

김태철/강경민 기자 kkm1026@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