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사의 '丙' 이코노미스트, 목소리 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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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이드 Story - 주가 급등락에 달라진 리서치센터
"영업 못하면서 비관만…" 그동안 비주류 설움
'시장 이기는 종목 없더라' 거시경제 분석 중시
"영업 못하면서 비관만…" 그동안 비주류 설움
'시장 이기는 종목 없더라' 거시경제 분석 중시
"선진국 부채 문제가 거시경제에 생각보다 큰 충격을 몰고올 수 있습니다. " "악재는 이미 반영됐다고 봐야죠.불확실성이 해소되면 주가는 더 오를 겁니다. "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가 미국의 신용등급을 떨어뜨리기 직전인 지난 7월 말.A증권사 리서치센터의 전략회의에선 비관론과 낙관론이 팽팽히 맞섰다. 거시경제를 담당하는 이코노미스트는 상황이 더 나빠지는 시나리오를 경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대다수 참석자는 '일시적 악재'로 끝날 가능성이 높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회의 주제는 거시경제였지만 이코노미스트는 달랑 한 명뿐.나머지는 대부분 업종 애널리스트였다.
회의를 중재한 전략팀장은 영업 상황을 고려한 끝에 낙관적인 다수 의견을 '하우스 뷰(종합 의견)'로 택했다. 그로부터 며칠 후 한국 증시에는 사상 초유의 폭락장이 연출됐다.
"우리끼리는 리서치센터의 병(丙)이라고 부르죠." 한 증권사 이코노미스트의 푸념이다. '갑(甲)'으로 대우받는 주식 섹터 애널리스트나 '을(乙)'로 불리는 채권 애널리스트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은 지위를 자조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세계적인 투자은행인 모건스탠리의 '간판' 역할을 하는 것은 스티븐 로치와 앤디 시에 같은 유명 이코노미스트들이다. 이들의 발언 하나하나는 글로벌 증시에 파급력을 가진다. 그 영향력은 종목이나 업종을 보는 섹터 애널리스트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다.
이에 비해 국내 증권사 이코노미스트들은 사내에서조차 주류에 끼지 못한다. 이들이 날카로운 통찰력을 보여주지 못한 탓도 있지만 증권사의 영업 논리도 작용하고 있다.
이코노미스트는 업무 특성상 눈에 보이는 실적을 내지 못한다. 한 증권사 애널리스트는 "기관투자가들을 상대로 주식영업을 하려면 국내외 경기에 대한 전반적인 내용보다 해당 주식을 잘 아는 사람이 나와 설명하는 게 더욱 효과적"이라고 말했다. 연봉도 적다. 잘나가는 섹터 애널리스트가 2억5000만~3억원 정도인 데 비해 이코노미스트는 5000만원 이상 덜 받는다.
최근 증시 폭락이 이코노미스트의 위상에 변화를 가져오고 있다. 거시경제 이슈로 코스피지수가 하루 5% 안팎의 등락을 거듭하면서 섹터별 전망이 무용지물이 되는 사태가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거시경제에 대한 분석은 초미의 관심사로 떠올랐고,경기에 대한 통찰력 없이 쏟아낸 '사자' 의견은 대부분 리서치센터의 명성에 돌이키기 힘든 치명상을 입혔다.
충격에 휩싸인 증권사 내부에선 자성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한 증권사 리서치센터장은 "증권사들이 개별 종목 분석에 집중해 거시경제 리서치에 대한 투자는 소홀했다"고 털어놨다. 국내 대형 증권사의 경우 30~40명의 애널리스트를 보유하고 있지만,이 중 거시경제 분석에 집중하는 이코노미스트는 많아야 2~3명이다. 중소형 증권사 중에는 단 한 명의 이코노미스트만 두고 있거나,아예 없는 곳도 많다.
이번 폭락장이 국내 이코노미스트의 전문성을 강화하는 계기가 될 것이란 기대도 있다. 다만 눈에 보이는 영업 실적을 중시하는 관행은 여전히 '스타 이코노미스트'를 길러내는 데 걸림돌로 지적되고 있다.
한 증권사 리서치센터 관계자는 "최근 이코노미스트의 중요성을 절감하고 있다"면서도 "이코노미스트를 뽑았을 때 비용 대비 효과를 거둘 수 있을지에 대해선 여전히 확신이 없다"고 말했다.
이태호 기자 thlee@hankyung.com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가 미국의 신용등급을 떨어뜨리기 직전인 지난 7월 말.A증권사 리서치센터의 전략회의에선 비관론과 낙관론이 팽팽히 맞섰다. 거시경제를 담당하는 이코노미스트는 상황이 더 나빠지는 시나리오를 경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대다수 참석자는 '일시적 악재'로 끝날 가능성이 높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회의 주제는 거시경제였지만 이코노미스트는 달랑 한 명뿐.나머지는 대부분 업종 애널리스트였다.
회의를 중재한 전략팀장은 영업 상황을 고려한 끝에 낙관적인 다수 의견을 '하우스 뷰(종합 의견)'로 택했다. 그로부터 며칠 후 한국 증시에는 사상 초유의 폭락장이 연출됐다.
"우리끼리는 리서치센터의 병(丙)이라고 부르죠." 한 증권사 이코노미스트의 푸념이다. '갑(甲)'으로 대우받는 주식 섹터 애널리스트나 '을(乙)'로 불리는 채권 애널리스트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은 지위를 자조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세계적인 투자은행인 모건스탠리의 '간판' 역할을 하는 것은 스티븐 로치와 앤디 시에 같은 유명 이코노미스트들이다. 이들의 발언 하나하나는 글로벌 증시에 파급력을 가진다. 그 영향력은 종목이나 업종을 보는 섹터 애널리스트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다.
이에 비해 국내 증권사 이코노미스트들은 사내에서조차 주류에 끼지 못한다. 이들이 날카로운 통찰력을 보여주지 못한 탓도 있지만 증권사의 영업 논리도 작용하고 있다.
이코노미스트는 업무 특성상 눈에 보이는 실적을 내지 못한다. 한 증권사 애널리스트는 "기관투자가들을 상대로 주식영업을 하려면 국내외 경기에 대한 전반적인 내용보다 해당 주식을 잘 아는 사람이 나와 설명하는 게 더욱 효과적"이라고 말했다. 연봉도 적다. 잘나가는 섹터 애널리스트가 2억5000만~3억원 정도인 데 비해 이코노미스트는 5000만원 이상 덜 받는다.
최근 증시 폭락이 이코노미스트의 위상에 변화를 가져오고 있다. 거시경제 이슈로 코스피지수가 하루 5% 안팎의 등락을 거듭하면서 섹터별 전망이 무용지물이 되는 사태가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거시경제에 대한 분석은 초미의 관심사로 떠올랐고,경기에 대한 통찰력 없이 쏟아낸 '사자' 의견은 대부분 리서치센터의 명성에 돌이키기 힘든 치명상을 입혔다.
충격에 휩싸인 증권사 내부에선 자성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한 증권사 리서치센터장은 "증권사들이 개별 종목 분석에 집중해 거시경제 리서치에 대한 투자는 소홀했다"고 털어놨다. 국내 대형 증권사의 경우 30~40명의 애널리스트를 보유하고 있지만,이 중 거시경제 분석에 집중하는 이코노미스트는 많아야 2~3명이다. 중소형 증권사 중에는 단 한 명의 이코노미스트만 두고 있거나,아예 없는 곳도 많다.
이번 폭락장이 국내 이코노미스트의 전문성을 강화하는 계기가 될 것이란 기대도 있다. 다만 눈에 보이는 영업 실적을 중시하는 관행은 여전히 '스타 이코노미스트'를 길러내는 데 걸림돌로 지적되고 있다.
한 증권사 리서치센터 관계자는 "최근 이코노미스트의 중요성을 절감하고 있다"면서도 "이코노미스트를 뽑았을 때 비용 대비 효과를 거둘 수 있을지에 대해선 여전히 확신이 없다"고 말했다.
이태호 기자 th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