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세훈 서울시장이 24일 치러진 무상급식 주민투표에서 사실상 패하면서 정치권에 포퓰리즘이 만연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내년 총선과 대선을 앞둔 상황에서 여야 모두 이번 선거로 민심을 확인했다고 판단하고 포퓰리즘 경쟁에 나설 개연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민주당 보편적 복지 정책에 속도

주민투표에서 승리한 민주당은 당장 29일 기존 무상 시리즈의 업그레이드 버전인 '지속 가능형 3+1'(무상급식 · 보육 · 의료+반값 등록금) 정책을 발표할 예정이다. 일부러 24일 주민투표 이후로 발표 시점을 잡았다. 외부 전문가집단에 의뢰해 논란이 컸던 무상의료 보장 범위를 다소 축소하고 구체적인 재원 마련 대책 등을 강화했다.

박영선 민주당 정책위 의장은 "이제는 새로운 복지정책을 내놓기보다 기존 정책의 실현 가능성을 높이겠다"면서 "지속 가능한 재원 마련 대책을 통해 복지를 이념과 정쟁의 도구로 삼는 한나라당과 확실히 다른 점을 보여주겠다"고 말했다.

반값 등록금을 들고 나왔던 황우여 한나라당 원내대표도 내년부터 만 0세에 대해서는 국가가 보육을 전액 책임지는 무상보육을 해야 한다고 최근 주장했다. 한나라당은 민주당의 '3+1' 무상 시리즈를 '복지 포퓰리즘'이라고 비판하고 있으나 양당 간 정책 차이는 '무상의료'에 그치는 수준이다.

◆복지 포퓰리즘 등장 우려

'보편적 복지'가 내년 총선과 대선에서 시험대에 올라 선택을 받을 경우 자칫 '복지 포퓰리즘'이 기승을 부릴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민주당은 '3+1'에 일자리와 주거까지 더해 점차 복지 범위를 확대한다는 방침이다. 이럴 경우 한나라당도 동참하지 않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이번 투표 결과를 계기로 현재 정부와 여당이 논의 중인 등록금 인하 방안도 소득에 따른 지원보다는 명목 등록금 인하로 기울 공산이 크다. 여당과 정부도 소득별 차등 지원이 맞다는 생각이지만,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모든 대학생들이 받는 등록금 고지서에 찍혀 나오는 숫자를 줄여야 하기 때문이다.

정책통인 이한구 한나라당 의원은 "정부 재정을 투입해 명목 등록금을 낮추는 식의 정책은 고졸 취업생이 대학생들의 등록금을 대주는 꼴이 될 수 있다"며 "우리 경제 규모에서는 복지는 자기 책임 아래 있되,소외된 사람에게 지원해주는 것을 원칙으로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실제 이번 선거의 이슈였던 무상급식을 실시하는 나라는 세계에서 스웨덴과 핀란드밖에 없다. 미국은 하위 50%까지,일본은 2%까지가 대상이다. 모두 1인당 국민소득이 우리보다 적게는 2.5배,많게는 4배 가까이 차이가 나는 나라들이다.

박종규 국회 예산정책처 경제분석실장은 이날 국회가 주최한 '재정운용 방향에 관한 공청회'에 참석,"지금의 정부 지출이 계속된다고 가정하면 현재 흑자인 통합 재정수지는 11년 뒤인 2024년부터 적자로 돌아설 것"이라고 전망했다. 경제성장률이 갈수록 떨어져 세입은 줄어드는 반면 각종 비과세 제도와 예산 확대로 세출은 증가한다는 것이다.

◆정치권의 승리 지상주의가 원인

정치권이 이를 모를 리 없다. 하지만 결국 정권을 잡기 위해서는 표가 필요한데 '무상'이라는 타이틀이 서울시장을 떨어뜨리면서 먹힌다는 게 입증됐다. 예컨대 젊은 층은 민주당,50대 이상은 한나라당으로 나뉜 상황에서 선거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스윙보터(swing voter · 부동층)인 40대가 민감한 보육과 교육에 집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수도권 출신의 한 의원은 "영 · 호남 등 당 지지도가 뚜렷한 지역은 계층이나 이해관계가 얽힌 투표에 상대적으로 덜 민감하겠지만,서울과 경기권은 바람이 불거나 이익에 반하는 정책을 하는 경우 바로 표로 이어진다"며 "한동안 뉴타운 지원에 관한 법안이 많았던 것도 그런 이유"라고 했다.

복지 외에도 투표율이 높은 계층이나 이익단체에 대한 정치권의 쏠림 현상이 더 심해질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투표에 적극적인 계층이 무섭다"(한 여당 의원)는 것이다. 최근 한나라당이 투표율이 높은 노인들을 위해 기초노령연금 지급액을 높이고 노인장기요양보험의 적용 범위를 넓히는 방안을 정부에 강하게 요구하고 있는 것도 이런 맥락이다.

김재후 기자 hu@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