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억짜리 '녹색개'는 불확실성 시대에 사랑ㆍ희망 상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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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찾은 中 인기 화가 저우춘야
"국제 공연계에는 한류(韓流)열풍이 거세지만 세계 미술시장에서는 한류(漢流)바람이 일고 있습니다. 미국 유럽 컬렉터들은 이미 중국 미술품을 주식이나 부동산처럼 대체 투자자산으로 여기죠.문화의 중심이 미국과 유럽에서 이제는 중국 한국으로 옮겨오고 있는 것을 실감해요. "
25일부터 5일간 대만세계무역센터에서 열리는 타이베이아트페어에 한국 화랑 아트사이드의 작가로 참여하기 위해 서울을 찾는 중국 현대미술 작가 저우춘야(56 · 사진)는 "백남준 등 대가들을 키워낸 한국 현대미술은 중국보다 더 국제성을 인정받고 있으며 잠재력도 대단하다"고 말했다.
'녹색개'로 국제적 명성을 얻은 그는 최근 5년간 복숭아밭에서 사랑을 나누는 남녀를 녹색과 붉은색의 강렬한 색채로 그린 작품 등 대작들을 선보여왔다. 지난해 프랑스 미술시장 정보업체 '아트프라이스닷컴'이 발표한 세계 현대미술작가 '톱50' 중 12위에 랭크됐다. '녹색개'는 지난 3월 경매에서 997만위안(17억원)에 팔려 자신의 최고 낙찰가 기록을 경신했다.
"불확실한 시대에도 변하지 않는 것이 사랑입니다. 예술의 최종 목표이기도 하죠.쓰촨 대지진을 겪은 저는 항상 우리 주변에 사랑이 필요하다는 걸 느꼈어요. "
그는 사랑과 희망의 의미를 일깨우기 위해 30여년 동안 돌과 개,복숭아꽃을 작품 모티브로 활용했다. "처음에는 돌에 사랑을 담아내느라 힘들었어요. 제가 키우던 독일산 개에 녹색을 칠해 중국인 특유의 사랑을 은유적으로 묘사했더니 미국 유럽 아시아 컬렉터들이 제 그림을 찾더라고요. "
중국 현대미술에 대한 자부심도 숨기지 않았다. "예술의 변화 속도가 중국에서 고층 건물이 들어서는 속도와 맞먹습니다. 중국은 최근 5년 사이에 서구 미술계가 100년간 이뤄낸 것을 따라잡았다고 봅니다. "
그는 1986년 쓰촨성미술학교를 졸업한 뒤 100달러와 라면 한 박스를 갖고 독일로 떠났다. 카셀에서 공부하며 백남준 비디오 작품을 처음 보고 충격을 받았다. 1989년 유학을 마치고 쓰촨으로 돌아와 1992년 대만 아트회사와 함께 돌과 인체에 관한 작업을 하기 시작했다. 독일에서 배운 신표현주의 기법을 중국식으로 재창조한 것이다.
"중국인들은 급속한 자본주의 문화의 유입 때문에 뭔가 몽롱하고 불안한 심리 상태를 보이고 있습니다. 저는 열두 살에 문화혁명을 겪었죠.그래서 마오쩌둥이라는 주춧돌 위에 새겨진 중국 공산당의 집단주의와 전체주의적 지배력을 꼬집는 사회 풍자에 주력해왔습니다. "
2006년부터 냉소적 리얼리즘으로 일관하는 왕광이,웨민쥔,팡리쥔 등과는 일정한 거리를 두면서 물질주의가 급속하게 번지는 중국에서 뿌리 없이 흔들리는 개인의 사랑과 희망을 드러내기 시작한 것도 이 때문이다. 앞으로 인물화 작업에 주력하겠다는 그는 이번 아트페어에 녹색개와 복숭아 작업 등 15점을 내놓는다.
김경갑 기자 kkk10@hankyung.com
25일부터 5일간 대만세계무역센터에서 열리는 타이베이아트페어에 한국 화랑 아트사이드의 작가로 참여하기 위해 서울을 찾는 중국 현대미술 작가 저우춘야(56 · 사진)는 "백남준 등 대가들을 키워낸 한국 현대미술은 중국보다 더 국제성을 인정받고 있으며 잠재력도 대단하다"고 말했다.
"불확실한 시대에도 변하지 않는 것이 사랑입니다. 예술의 최종 목표이기도 하죠.쓰촨 대지진을 겪은 저는 항상 우리 주변에 사랑이 필요하다는 걸 느꼈어요. "
그는 사랑과 희망의 의미를 일깨우기 위해 30여년 동안 돌과 개,복숭아꽃을 작품 모티브로 활용했다. "처음에는 돌에 사랑을 담아내느라 힘들었어요. 제가 키우던 독일산 개에 녹색을 칠해 중국인 특유의 사랑을 은유적으로 묘사했더니 미국 유럽 아시아 컬렉터들이 제 그림을 찾더라고요. "
그는 1986년 쓰촨성미술학교를 졸업한 뒤 100달러와 라면 한 박스를 갖고 독일로 떠났다. 카셀에서 공부하며 백남준 비디오 작품을 처음 보고 충격을 받았다. 1989년 유학을 마치고 쓰촨으로 돌아와 1992년 대만 아트회사와 함께 돌과 인체에 관한 작업을 하기 시작했다. 독일에서 배운 신표현주의 기법을 중국식으로 재창조한 것이다.
"중국인들은 급속한 자본주의 문화의 유입 때문에 뭔가 몽롱하고 불안한 심리 상태를 보이고 있습니다. 저는 열두 살에 문화혁명을 겪었죠.그래서 마오쩌둥이라는 주춧돌 위에 새겨진 중국 공산당의 집단주의와 전체주의적 지배력을 꼬집는 사회 풍자에 주력해왔습니다. "
김경갑 기자 kkk10@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