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만큼 인사에 목을 매는 조직도 없을 것이다. 그럴 듯한 보직을 차근차근 밟아가야 출세가 보장되는 데다 지방으로 갈 경우 삶의 터전이 180도 바뀌기 때문이다. 범죄와 끝간 데 없는 씨름을 벌이는 검사들에게 인사는 유일한 탈출구이긴 하다. 그래도 인사 주기 1년은 너무 짧은 것 같다.

통상 부부장급 이상은 8월,평검사는 2월이 인사철이다. 같은 부서에서도 사실상 6개월마다 뉴페이스를 접하게 된다. 얼굴을 익힐 만하면 작별인사를 나누기 바쁘다. 그러니 한 분야에서 전문성을 쌓는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이번 인사에서 검사장으로 승진한 한 간부는 "형사부에서 조금,특수부에서 조금,공안부에서 조금씩 근무해 내세울 만한 게 하나도 없는 것 같다"고 씁쓸해했다. 계단 오르듯 1년에 한 단계씩 올라왔는데 갑자기 벼랑 끝에 다다른 느낌이라는 것.

국회 인사청문회도 검사들을 위축시킬 뿐더러 경쟁력마저 떨어뜨린다. 대검의 한 간부는 "권재진 법무장관은 주식투자한 내역은 없더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인사청문회를 보면서 트집 잡힐 일은 아예 멀리하게 되더라는 고백이다. 이렇게 되면 금융에 문외한이 되는 것은 시간문제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검찰 조직의 소모품으로 전락하고 있지 않나 하는 의구심을 갖기 시작한 것이 요즘 서초동 분위기다. 유학보내랴 학원비 마련하랴 아이들 뒷바라지에 조직에 대한 충성은 우선순위에서 밀려나고 있다. 한상대 검찰총장은 취임일성으로 부정부패, 종북좌파세력,검찰내부 적과의 3대 전쟁을 선포했지만 검사들을 다독일 해법부터 고민해봐야 하지 않을까.

김병일 기자 kb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