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회를 잘 포착해야 한다는 점에서 사진과 인생은 비슷한 것 같아요. 한번 놓친 기회는 다시 붙잡기 힘들고 회한이나 슬럼프도 있잖아요. 물론 사진은 쉽게 다시 찍고 편집하고 감정을 담아둘 수 있지만 인생은 그럴 수 없다는 게 다르지만 말입니다. "

박병원 전 청와대 경제수석(59 · 사진)은 24일 사진과 인생을 이렇게 비교했다. 최근 10여년간 틈틈이 꽃 사진을 찍어온 그는 경기 파주시 헤이리 금산갤러리에서 열리는 북한 어린이 돕기 자선전시회 '꽃이 희망이다'에 다른 작가들과 함께 참여하고 있다. 박 전 수석은 "남들이 쉽게 접근할 수 없는 지역에 자라는 야생화의 아름다움을 함께 즐기려는 뜻에서 이번에 전시를 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그가 사진전을 연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경기고와 서울대 법대를 졸업하고 재정경제부(현 기획재정부) 차관,우리금융지주 회장,대통령 경제수석 비서관을 거쳐 정책금융공사 고문으로 일하고 있는 박 전 수석은 35년간 공직생활 중에도 틈나는 대로 사진 작업을 병행했다. 새벽에 출사를 나가기도 했고 깊은 산중을 찾기도 했다. 현장에서 2~3일씩 묵으며 찍은 꽃사진만 수만점에 이른다.

사진 작업으로 '인생 2막'을 즐기는 그는 2000년 초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의 반 고흐 뮤지엄에서 아몬드꽃 그림을 본 뒤로 본격적으로 울창한 숲의 야생화와 희귀 식물에 렌즈를 들이대기 시작했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아버지에게서 장난감 같은 사진기를 선물받았어요. 어려서부터 꽃과 식물에 관심이 많아 야산과 들판에 핀 꽃들을 찍어댔죠.그때의 생생한 감성이 저에게 윤활유가 됐습니다. "

꽃에 대한 박 전 수석의 사연과 감동은 끝이 없다. "문경 하늘재에 서식하는 쪽동백을 보세요. 그 순결한 흰색은 오래오래 마음을 사로잡습니다. 동강 할미꽃,오대산 얼레지와 홀아비바람꽃도 접하기 힘든 꽃이죠."

그는 "공직을 떠난 2009년 9월부터 약 10개월간 미국 스탠퍼드대에 머물면서 캘리포니아,오르곤,시에라네바다 사막을 여행하며 수많은 야생화를 카메라에 담았다"며 배낭에서 노트북PC를 꺼내 각양각색의 꽃사진을 클릭하고 이름과 스토리를 들려줬다.

"이건 캘리포니아 퍼피라고 하는데 작년에 찍었어요. 주황색 꽃잎이 하도 요염해서 캘리포니아 양귀비라고도 부릅니다. 유카라는 꽃인데 흰색의 종 모양이 신기하죠.여기 눈송이같이 생긴 아이스 플랜트는 캘리포니아 바닷가 모래 언덕에 지천으로 피어있습니다. 흰 꽃송이도 아름답지만 눈처럼 떨어져 쌓인 아몬드의 낙화 모습은 아무 때나 찍을 수 없어요. "

사진 분야에서 전문가 못지않은 실력을 자랑하는 박 전 수석이 꽃사진에 매달리는 이유는 뭘까. 그는 "꽃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기보다는 좋아서 찍는다"며 "야생화를 찍을 때면 활짝 핀 희망이 보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어렵고 힘들어도 누구나 꽃을 보면 마음까지 활짝 웃게 된다"며 "모든 사람이 꽃사진을 보고 즐거워하면 내 소임은 끝난 것"이라고 덧붙였다.

2000년 초 구입한 소니 카메라로 촬영한 꽃들에서는 초자연적인 생명력이 느껴진다. 화면에 박힌 다양한 색감의 꽃과 낙화는 생성과 소멸이라는 자연의 순환을 상징한다고 박 전 수석은 설명했다. 이번 전시회는 내달 4일까지 이어진다.

김경갑 기자 kkk10@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