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조치로 인해 당장 가계대출 증가율이 둔화될 수 있지만 오히려 가계부채 문제를 경착륙시킬 수 있다. 무엇보다도 부동산 시장에 직격탄을 던질 수 있다. 1990년 대출 총량규제를 했다가 토지가격 급락을 가져온 일본의 사례를 답습할 수 있기 때문이다. 1980년대 후반 일본 정부는 거품경제의 폐해를 우려해 전방위적 버블 확대 억제 정책을 썼다. 처음에는 토지세제 개혁으로 토지관련(취득,보유,양도) 세금을 종전보다 무겁게 부과했다가 버블 후반기에는 통화증가율을 억제하고,재할인율을 큰 폭으로 인상하는 등 강력한 긴축정책을 펼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지부동이던 토지가격이 1990년 3월 토지관련 융자에 대한 총량규제(부동산관련 대출증가율을 자산범위 내로 규제) 도입으로 인해 부동산에 대한 수요가 원천 봉쇄되면서 가수요 매물이 순식간에 시장으로 쏟아져 나왔다. 그동안 절대적 토지 순매수자들이 졸지에 순매도자로 돌변하면서 토지가격이 폭락해 '잃어버린 10년'을 맞이했다.
우리나라는 버블의 주체와 대상이 다르다는 점을 제외하고는 당시 일본 상황과 매우 비슷하다는 점을 생각하면 부동산 거품 붕괴는 이미 취약해진 가계에 적지 않은 충격을 줄 가능성이 높다. 특히 규제가 미흡한 2금융권으로의 대출 쏠림 현상은 앞으로 이들 금융회사의 건전성 악화로 연결되면서 실물과 금융이 동시에 불황에 빠지는 '가계발(發) 복합불황'이 촉발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현재 국내 가계부채 문제의 핵심은 금융위기 이후의 신규 가계대출보다 금융위기 이전 위험성을 인지하지 못한 채 담보인정비율(LTV),총부채상환비율(DTI) 등의 규제가 느슨한 상태에서 급증한 가계대출이라 생각된다. 따라서 가계부채 연착륙의 관건은 신규 가계부채 증가율을 인위적으로 억제하기보다는 이미 커져버린 가계부채가 갑자기 터지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가계부채는 마치 건강할 때는 괜찮지만 합병증에 걸리면 위험한 고혈압과 비슷해 경제 여건이 악화될 경우 가계의 위험부담이 갑자기 급증할 수 있다.
따라서 가계부채 문제를 다루는 정부정책은 금리인상,총량규제 등 정책당국 또는 금융회사 입장에서 거시 · 규제적으로 접근하기보다는 가계 입장에서의 미시 · 시장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즉 가계부채 문제를 연착륙시키기 위해선 건전한 금융소비자들이 금융생활을 계속하되 가계가 높아진 부채를 지탱할 수 있게끔 유도해야 한다. 이를 위해 안정적 소득확보 차원에서 고용이 늘어야 하고,커진 경제성장 과실이 가계 소득 증가로 연결되도록 해야 한다. 또한 가계대출 구조를 고정금리 또는 장기로 전환하도록 적극적으로 유도하는 한편 가계부채 비중이 높은 중산층의 실물자산 유동화 방안을 서둘러 마련해 가계 유동성 위기에도 대비해야 한다.
뿐만 아니라 가계들도 급변하는 금융환경 속에 적응하기 위해 지나친 실물자산,예금 위주에서 탈피해 주식,보험,연금 등 자본시장 상품이 적절히 배합된 포트폴리오 재구성 등 가계 재무상태를 개선하기 위한 노력이 시급하다. 또 가계의 금융 책임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기 위해 금융지식 축적이 필요하며 건전한 소비생활을 지향하고자 하는 노력이 뒤따라야 할 것이다.
박덕배 < 현대경제硏 전문연구위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