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감독 당국이 신용등급이 낮은 서민들에게 연 6~10%의 높은 이자를 주는 서민전용 고금리 예 · 적금 상품을 출시하도록 은행들을 압박하고 있다고 한다. 정부가 운영하는 우체국이 작년 4월 7~10등급 저신용자를 대상으로 연 10%짜리 '새봄자유적금'을 내놓은 것을 따라하라는 얘기다. 소위 친서민 정책의 은행판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금융감독 당국은 서민들이 고금리 상품을 마다할 이유가 없다고 보는 것이겠지만 실제론 그림의 떡과 다를 게 없다. 빚 갚기도 버거운 형편이어서 저축을 하려 해도 할 수가 없는 것이다. 실제 서민들의 소득 사정은 빠듯하기만 하다. 통계청의 2분기 가계동향을 보면 서민층으로 분류할 수 있는 소득 1분위(하위 20%) 가계는 월 22만7000원 적자여서 저축은커녕 빚을 내 사는 처지다. 소득 2분위(하위 20~40%) 가계도 소득(5.0%)보다 지출(7.0%)이 더 늘어 흑자액이 13.0%나 줄어든 월 20만원에 그치고 있다. 여기에다 천정부지 전셋값을 비롯해 물가는 4%대 고공행진을 벌인다. 서민들이 은행 예금 금리가 낮아서 저축을 하지 않는다고 볼 수 없는 이유다.

이미 시중에 나와 있는 서민용 금융상품이 그리 잘 팔리지 않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2800여개 우체국에서 판매 중인 새봄자유적금만 해도 당초 1만3000명(1인당 300만원) 한도로 가입자를 받았지만 1년 반이 되도록 다 팔리지 않았다. 저축 여력이 있다면 비과세 상품인 생계형저축 장기주택마련저축을 들거나 은행보다 이자를 1~2%포인트 더 주는 새마을금고 신협 저축은행 등 서민금융회사를 이용하지 않을 리 없다.

땅 짚고 헤엄치기식 돈장사로 사상 최대 이익을 내는 은행들을 두둔하려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정유사들에 기름값을 내리라고 압박하듯,은행들도 '공생발전'에 성의표시라도 하라는 식의 전시행정은 결코 옳지 않다. 그보다 저축은행 사태처럼 서민들이 피눈물을 흘리지 않도록 금융회사에 대한 건전성 감독을 철저히 하는 게 더 우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