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진짜 '나쁜 투표' 된 서울시 주민투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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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불참' 편갈라 민주주의 후퇴…여야 승패 떠나 자기모순 반성을
서울시 주민투표가 끝내 무산됐다. 오세훈 시장이 내건 '단계적 무상급식이냐,전면 무상급식이냐' 하는 문제가 수면 아래로 묻혀 버린 것이다. 그 대신 '투표냐,불참이냐' 하는 새로운 이슈가 제기되면서 불참 쪽이 이겼다. 동시에 투표하자고 했던 한나라당은 패배하고,불참하자는 민주당이 승리했으며 우파보수가 열패감을,좌파진보는 승리감을 맛보게 됐다.
하지만 이렇게 이분법적(二分法的)으로만 보기엔 이번 서울시 주민투표는 너무나 많은 숙제를 남겼다. 복지의 문제 말고도 민주주의의 문제에 대해 크나큰 고민을 안겨주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심각한 것은 이번 주민투표가 공개투표가 돼버렸다는 점에 있다. 투표 참여 자체를 나쁜 것으로 규정하는 좌파 진보 진영과 민주당의 캠페인이 주효했기 때문에 참여 여부 자체가 유권자들의 의사 표현이 된 것이다. 왜 공개투표가 문제가 되는가. 그것은 동료나 주변 사람들의 눈치를 보고 투표해야 하기 때문에,자신의 진정한 뜻을 표출하기 어렵다는 점에 있다.
투표에서 자신의 진심을 표출하지 못한다면 투표를 할 이유는 어디에 있는 것인가. 여기서 좌파 진보와 민주당에서 무상급식을 옹호하면서 가난한 아이들에게만 점심을 무료로 주면 아이들이 '눈칫밥'을 먹게 된다는 주장을 폈던 일이 새삼 생각난다. 바로 눈칫밥이야말로 '낙인효과'일 터이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투표 불참을 유도하는 것 자체가 자기모순이었다. 무상급식 문제를 가늠하려는 유권자들에게 '눈치투표'를 강요해 낙인을 찍게 하는 행위가 '눈칫밥' 반대논리와 어떻게 공존할 수 있는지 궁금하다.
눈치투표는 민주 선거가 아니다. 권위주의 체제 아래에서의 높은 투표율이나 공산주의 사회에서의 100% 참여율이 부끄러운 수치가 되는 이유도 바로 이 눈치투표와 공개투표의 맹점(盲點) 때문이다.
투표를 통해서 유권자들의 진정한 뜻이 표출되지 못한다면 선거의 의미는 전혀 없다. 그런 점에서 볼 때 이번 주민 투표는 부자 아이와 가난한 아이를 편 가르는 투표였기 때문에 '나쁜 투표'가 된 것이 아니라,투표하는 사람과 투표하지 않는 사람을 편 갈랐기 때문에 '나쁜 투표'가 된 것이다.
물론 이번에 25.7%의 투표 참여자들이 '위너'가 된 것은 아니다. 이 표를 가지고 과거 오 시장의 지지율이나 곽노현 서울시 교육감의 지지율과 비교해 '위너의 표'라고 강변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도 25.7%는 무상급식에 대한 유의미한 반대였다. 무상복지 포퓰리즘이 하나의 강물처럼 흐르고 있는 가운데,이를 거슬러 올라가는 '연어의 투표'와 같은 성격을 갖는 '소신투표'였기 때문이다. "왜 아이들 밥 먹이는 문제를 가지고 싸우느냐" 하는 지청구를 받으면서도 아랑곳하지 않고 당당하게 투표장에 나가지 않았던가.
이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나. 오세훈 시장은 약속한 대로 좌고우면(左顧右眄)할 것 없이 즉시 사퇴해야 한다. 그것이 자신의 약속을 지키는 아름다운 정치가의 모습이다. 원칙을 위해서 몸을 던졌다는 평가를 받을 때 전투에서는 졌으나 전쟁에서 진 것은 아니라는 칭송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한나라당이 반성할 것은 무엇인가. 늘 해오던 모습이긴 하나,대의(大義) 앞에 하나가 되지 못하고 총선과 대선 표를 계산하며 사분오열(四分五裂)된 것이나 무상급식은 반대하면서 무상보육을 내놓는 이율배반적인 태도를 보인 것이야말로 기회주의적 자세일 터이다. 민주당도 이번의 주민투표 결과를 보고 승리로 생각해 교만해져서는 안 된다. 선거 민주주의 정신을 훼손하면서까지 자신의 뜻을 이룬 것을 가지고 기뻐할 일인지 아니면 반성할 일인지 스스로 가늠해 보아야 한다. 입만 열면 민주주의가 후퇴했다고 주장해왔는데,주민투표를 공개투표로 만든 것이 과연 민주주의의 발전인지 후퇴인지 하는 문제를 스스로 거울에 비춰보면서 대답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박효종 < 서울대 정치학 교수 >
하지만 이렇게 이분법적(二分法的)으로만 보기엔 이번 서울시 주민투표는 너무나 많은 숙제를 남겼다. 복지의 문제 말고도 민주주의의 문제에 대해 크나큰 고민을 안겨주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심각한 것은 이번 주민투표가 공개투표가 돼버렸다는 점에 있다. 투표 참여 자체를 나쁜 것으로 규정하는 좌파 진보 진영과 민주당의 캠페인이 주효했기 때문에 참여 여부 자체가 유권자들의 의사 표현이 된 것이다. 왜 공개투표가 문제가 되는가. 그것은 동료나 주변 사람들의 눈치를 보고 투표해야 하기 때문에,자신의 진정한 뜻을 표출하기 어렵다는 점에 있다.
투표에서 자신의 진심을 표출하지 못한다면 투표를 할 이유는 어디에 있는 것인가. 여기서 좌파 진보와 민주당에서 무상급식을 옹호하면서 가난한 아이들에게만 점심을 무료로 주면 아이들이 '눈칫밥'을 먹게 된다는 주장을 폈던 일이 새삼 생각난다. 바로 눈칫밥이야말로 '낙인효과'일 터이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투표 불참을 유도하는 것 자체가 자기모순이었다. 무상급식 문제를 가늠하려는 유권자들에게 '눈치투표'를 강요해 낙인을 찍게 하는 행위가 '눈칫밥' 반대논리와 어떻게 공존할 수 있는지 궁금하다.
눈치투표는 민주 선거가 아니다. 권위주의 체제 아래에서의 높은 투표율이나 공산주의 사회에서의 100% 참여율이 부끄러운 수치가 되는 이유도 바로 이 눈치투표와 공개투표의 맹점(盲點) 때문이다.
투표를 통해서 유권자들의 진정한 뜻이 표출되지 못한다면 선거의 의미는 전혀 없다. 그런 점에서 볼 때 이번 주민 투표는 부자 아이와 가난한 아이를 편 가르는 투표였기 때문에 '나쁜 투표'가 된 것이 아니라,투표하는 사람과 투표하지 않는 사람을 편 갈랐기 때문에 '나쁜 투표'가 된 것이다.
물론 이번에 25.7%의 투표 참여자들이 '위너'가 된 것은 아니다. 이 표를 가지고 과거 오 시장의 지지율이나 곽노현 서울시 교육감의 지지율과 비교해 '위너의 표'라고 강변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도 25.7%는 무상급식에 대한 유의미한 반대였다. 무상복지 포퓰리즘이 하나의 강물처럼 흐르고 있는 가운데,이를 거슬러 올라가는 '연어의 투표'와 같은 성격을 갖는 '소신투표'였기 때문이다. "왜 아이들 밥 먹이는 문제를 가지고 싸우느냐" 하는 지청구를 받으면서도 아랑곳하지 않고 당당하게 투표장에 나가지 않았던가.
이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나. 오세훈 시장은 약속한 대로 좌고우면(左顧右眄)할 것 없이 즉시 사퇴해야 한다. 그것이 자신의 약속을 지키는 아름다운 정치가의 모습이다. 원칙을 위해서 몸을 던졌다는 평가를 받을 때 전투에서는 졌으나 전쟁에서 진 것은 아니라는 칭송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한나라당이 반성할 것은 무엇인가. 늘 해오던 모습이긴 하나,대의(大義) 앞에 하나가 되지 못하고 총선과 대선 표를 계산하며 사분오열(四分五裂)된 것이나 무상급식은 반대하면서 무상보육을 내놓는 이율배반적인 태도를 보인 것이야말로 기회주의적 자세일 터이다. 민주당도 이번의 주민투표 결과를 보고 승리로 생각해 교만해져서는 안 된다. 선거 민주주의 정신을 훼손하면서까지 자신의 뜻을 이룬 것을 가지고 기뻐할 일인지 아니면 반성할 일인지 스스로 가늠해 보아야 한다. 입만 열면 민주주의가 후퇴했다고 주장해왔는데,주민투표를 공개투표로 만든 것이 과연 민주주의의 발전인지 후퇴인지 하는 문제를 스스로 거울에 비춰보면서 대답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박효종 < 서울대 정치학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