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성' 베토벤의 '카이사르 망상'은 이렇게 대단했다. 베토벤뿐만 아니다. 작곡가들의 자화자찬은 뻔뻔하기가 이를 데 없었다는 게 정설이다. 이고리 스트라빈스키는 세계 최고 작곡가를 묻는 질문에 '나'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위대한 음악가는 다 그랬을까. 천만의 말씀이다. 슈베르트는 이 둘과 달랐다. 슈베르트는 자신의 천재성을 전혀 몰랐다고 한다. 니체의 표현대로라면 "풀밭에 누워 아이들과 놀면서 자신을 어린아이로 여긴" 거인이었다.
품성이 이렇게 상반된 베토벤과 슈베르트는 어떻게 똑같이 유명해졌을까. 오로지 좋은 음악을 만든 덕일까.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는 게 아닐까. 또 우리는 정말 자격이 있는 사람을 우러르고 있는 것일까.
《만들어진 승리자들》의 저자는 세계사에 기록된 '승리자들'의 이면을 파헤친다. 문학과 예술,정치와 전쟁,과학과 사상 등 각 분야에서 커다란 족적을 남겼다고 평가받는 위인들의 면면에 현미경을 들이댄다. 여러 자료를 뒤져 역사 속에 묻혀 있던 사실들을 생생하게 드러내 보인다.
현대적인 화장술과 성형수술의 성공적인 수혜자인 그레타 가르보와 마릴린 먼로,에디슨보다 25년 전에 발명된 전구 이야기,자신이 신대륙을 발견했다고 믿지 않았던 아메리카의 세 번째 발견자 콜럼버스,알려진 벤츠의 삼륜차보다 백여년 전에 발명된 자동차의 역사,주변 사람들의 호주머닛돈을 제 돈인 양 꺼내 썼다는 마르크스,도박 빚 때문에 밤낮으로 작품을 썼던 도스토옙스키 등 독선적이거나 비겁하거나 뻔뻔하거나 운이 좋았을 뿐인 위인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저자는 우리에게 익숙한 위인의 역사가 사실의 묶음에 불과하기보다 특정한 환경과 우연,운이 어지럽게 뒤엉켜 발생한다는 데 주목했다. "진짜가 뭔지 모를 때도 많지만 어떤 때는 진짜를 알 수 있는데 가짜를 숭배하기도 한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재능은 특출났지만 이름 없이 세상을 떠난 무명인의 가치를 재발견하고,기회가 있었음에도 자리를 노리지 않은 사람들에게 박수를 보낸다.
저자는 "명성이 어차피 로또와 다름없다면 우리 자신의 새롭고 독자적인 평가로 역사가와 비평가들의 작위적이며 우연적인 결정을 깨부수는 자유를 누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김재일 기자 kji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