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1년 1 · 4후퇴 때 국민방위군 고위 장교들이 거액의 현금과 군수품을 착복하는 사건이 터졌다. 그로 인해 수십만명의 국민방위군에게 지급할 식량과 옷이 턱없이 부족해졌다. 혹한 속에 굶어 죽거나 얼어 죽는 병사가 속출했고,집단탈출이 줄을 이었다. 그해 7월19일 열린 중앙고등군법회의에서 국민방위군 사령관과 부사령관,재무실장 등 관련자 5명에게 사형이 선고됐다. 있어선 안 될 비리로 창군 초기 군의 기강이 크게 흔들리고 말았다.

1993년엔 군전력 현대화를 위한 '율곡 사업'추진 과정에서 고위층이 거액의 뇌물을 받은 사건이 발생했다. 이른바 '율곡 비리'다. 두 명의 전직 국방장관과 전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전 해군 · 공군참모총장이 각각 수천만원에서 수억원씩을 챙긴 것으로 드러나 충격을 줬다. 1996년엔 정찰기 도입과 관련,무기 중개상 린다 김의 로비 의혹이 제기돼 나라가 시끄러웠다. 이후에도 비리는 끊이지 않았다. 불량 중국산 부품을 국산으로 속여 끼워파는가 하면 납품 원가나 장비 성능 시험 결과를 조작하는 등 온갖 방법이 동원됐다.

군납 비리가 없어지지 않는 데는 이유가 있다. 군수품 구매가 기밀로 다뤄지는 데다 일부 군인들과 납품업체 간에 커넥션이 형성된 탓이다. 지난 5년간 방산업체에 취업한 군인만 400명이 넘는다. 작년에도 링스헬기 등 해군 장비의 허위정비 사건을 비롯 불량 전투화,전투장갑차 K-21 결함 등의 비리가 드러났다. 대부분 방위사업청에 근무하는 현역 장교와 예비역 장교들이 연루됐다. 얼마 전엔 전 공군 참모총장이 미국 군수업체에 군사기밀을 유출한 의혹을 받기도 했다.

곰팡이 핀 햄버거와 불량 건빵을 군납한 업체 대표와 이를 눈감아주고 5000여만원을 받은 방사청 직원이 검거됐다. 햄버거와 건빵은 2009년 9월부터 2년간 납품돼 국군장병들이 먹었다고 한다. 더 한심한 건 군납업체들에 입찰 · 단속 정보를 흘린 대가로 금품을 받은 현역군인 8명도 적발됐다는 점이다. 김모 중령은 곰팡이 핀 햄버거를 찍은 사진을 업체에 전송해 금품과 향응을 공공연히 요구했단다.

우리 국군장병들의 건강을 팔아 자신들의 배를 채운 꼴이다. 자식을 군에 보낸 부모들로서는 기가 막힐 노릇이다. 액수의 많고 적음을 떠나 군 신뢰에도 큰 상처를 입혔다. 예부터 먹는 것 갖고 장난치지 말라고 했다. 비리 중에도 참 저질이다.

이정환 논설위원 jh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