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브 잡스가 애플 최고경영자(CEO)에서 물러난다는 소식이 전해진 25일.서울 삼성전자 본사에서 만난 권오현 DS총괄 사장은 "(애플과의 관계에) 큰 변화는 없을 것 같다"고 말했다. 애플은 권 사장이 맡고 있는 삼성전자 DS총괄(반도체,LCD패널)의 최대 고객사지만 휴대폰 사업을 하고 있는 무선사업부의 최대 라이벌이다. 그는 "(잡스의 사임 소식이) 솔직히 갑작스럽다. 연일 서프라이징(surprising)한 뉴스가 터져나오니까…"라고 했다.

잡스의 전격 사임에 삼성전자는 하루 종일 술렁였다. 스마트폰 · 태블릿PC 시장 주도권을 놓고 피말리는 특허전쟁을 벌이고 있는 상대 기업 수장이 갑작스레 물러났기 때문이다. 이날 잡스 사임에 대한 삼성전자의 공식 반응은 "노 코멘트"였다. 그러나 내부적으로는 잡스 사임으로 애플과의 관계에 어떤 변화가 있을지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분위기다.

◆ 스마트 전쟁 어떻게 될까

가장 큰 관심은 애플과 벌이고 있는 특허소송전의 향방이다. 지난 4월15일 애플이 삼성전자를 상대로 특허침해 소송을 낸 이후 두 회사 간 소송전은 '사활을 건 싸움'으로 번지고 있다. 한국 독일 일본 미국 등 9개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전개되고 있는 애플과의 소송전에서 삼성전자는 세 번 연속 밀렸다. 호주에 이어 지난 9일 독일 법원이 애플 손을 들어줬고 24일 네덜란드 법원도 삼성전자 태블릿PC 판매를 금지해달라는 애플의 신청을 일부 받아들였다.

일각에선 잡스를 대신해 팀 쿡이 CEO에 오르면서 특허소송전이 새로운 국면을 맞을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쿡이 그동안 애플의 부품 조달과 대외 협력을 책임지는 최고운영책임자(COO)로서 잡스에 비해 삼성전자와 돈독한 관계를 맺어왔다는 점에서다.

서원석 NH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쿡은 삼성전자와 우호적인 관계를 맺고 있어 특허소송에도 긍정적인 소식이 될 것"으로 전망했다.

그러나 삼성그룹 관계자는 "삼성전자 COO인 이재용 사장과 쿡이 상당한 친분 관계를 쌓고 있는 건 사실이지만,(그런 관계가) 소송전에 특별한 영향을 주진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권 사장이 "애플과의 관계에 큰 변화가 없을 것"이라고 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애플 약화,삼성 부품사업엔 악재

국내 전자업체 A사 임원은 "잡스의 사임은 삼성전자에 심리적인 호재인 건 분명하다"며 "다만 쿡이 잡스의 투병기간에 경영을 이끌었다는 점에서 애플의 급격한 추락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삼성전자 입장에서도 쿡이 주도하는 애플의 추락은 반가운 뉴스만은 아니다. 애플이 최대 라이벌인 동시에 최대 고객사라는 점에서 복잡한 '애증관계'로 얽혀있기 때문이다. 애플은 작년에만 6조원어치의 부품(반도체,패널)을 삼성전자에서 구입한 대형 고객사다. 올 1분기에는 2조1450억원어치의 부품을 구입해 소니를 제치고 최대 고객사로 올라섰다. 따라서 애플이 경쟁력을 잃으면 아이폰 · 아아패드용 부품을 팔 최대 고객을 잃게 되고 삼성전자의 수익성도 떨어질 수밖에 없다.

물론 애플이 올 들어 부쩍 속도를 내고 있는 '부품 거래처 다변화' 전략을 쉽게 바꾸지는 않을 것이란 점에서 삼성전자가 처한 사정이 바뀌었다는 관측도 있다. 애플은 그동안 삼성전자에 전량 맡겼던 모바일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를 대만 TSMC에 일부 넘기려 하고,아이패드용 LCD 패널 공급 물량도 일본 샤프와 도시바로 다각화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독자 플랫폼 가속화

삼성전자가 이날 '바다2.0'을 공개한 것은 모바일 분야에서 독자 플랫폼을 구축한다는 전략을 고수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많은 전문가들의 지적처럼 언제까지나 구글의 안드로이드 플랫폼에만 의존할 수는 없다는 판단이기도 하다. 바다2.0은 이전 버전인 '바다1.2'에 비해 최신 스마트폰의 기능을 대거 탑재해 눈길을 끈다. 아직 안드로이드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다음 단계 개발 때는 충분한 성능을 보여줄 수 있을 정도의 잠재력을 시연했다는 평이다.

삼성은 다음달 독일에서 열리는 유럽 최대 가전전시회인 'IFA 2011'에 바다2.0을 탑재한 웨이브폰 3종을 선보임으로써 글로벌 통신사들에 자체 역량을 점차 알려간다는 전략이다.

초기 안드로이드폰에서 지적되던 애플리케이션 부족을 해결하기 위한 대책도 내놨다. 개발자들이 임대해 사용할 수 있는 오션센터를 제공하고 무상으로 개발 관련 교육을 하기로 했다. 여기서 개발되는 애플리케이션에 대한 소유권은 100% 개발자들에게 주기로 했다.

삼성 관계자는 "아직 안드로이드와의 격차가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지속적인 업데이트를 통해 바다 기능을 개선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이태명/강영연 기자 chihir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