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벌제?…의사들에 찔러준 현금만 수백만원"
"김 과장,너무 센스없는 거 아냐.경쟁사 하는 것 좀 참고하지."

지난 24일 오전 9시30분,서울의 한 개인병원 총무과.영업차 병원을 방문한 A제약사 K모씨(30)에게 이 병원의 한 의사는 '반갑다'는 인사말 대신 가시있는 한마디를 던졌다. K씨는 처음 듣는 얘기가 아니라는 듯 가벼운 웃음으로 눙쳤다. 정부가 지난해 11월 '리베이트 쌍벌제'를 도입한 이후에도 제약사와 의사 간 은밀한 뒷거래가 여전하다는 제보를 받고 K씨와 동행취재에 나선 기자가 처음 방문한 병원에서 제약사 영업맨과 의사가 주고 받는 일상의 대화였다.

"올 들어 (내가) 의사들에게 현금으로 건넨 돈만 수백만원이 넘는다. 리베이트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 병원으로 가는 승용차 안에서 들은 K씨의 충격적인 고백이 이해되는 대목이었다. 의미심장한 인사말을 건넸던 그 의사는 "9월에 야유회를 갈 건데 같이 가자"고 제안했다. K씨는 병원을 나서며 "야유회 숙소를 잡아주고 식당을 정해 미리 결제해 달라는 것"이라고 귀띔했다.

"쌍벌제?…의사들에 찔러준 현금만 수백만원"
쌍벌제 도입 이후에도 여전히 남아 있는 리베이트 수법이다. K씨는 병원 야유회에 따라가는 것은 물론이고 운전 기사 노릇도 해야 한다. 그렇게 되면 가족과 나들이 계획도 물거품이다. 한숨소리가 들렸다. 쌍벌제 시행 이후 리베이트가 겉으론 줄었지만 신종 수법들이 생겨나 그대로라는 게 그의 분석이다.

다음 행선지인 경기도에 있는 W약품에 도착한 건 오전 10시30분쯤.이곳은 제약업계에서 '도매상'으로 불리는 곳이다. K씨는 "월말 실적을 맞추기 위해 '밀어넣기'(매월 영업실적이 목표액에 미달되면 도매상 창고로 제품을 우선 보내고 후결제하는 방법)를 위해 왔다"며 "의사들을 상대하는 것보다 '밀어넣기'를 하는 게 더 힘들 때도 있다"고 말했다.

보통 대학병원의 경우 판매가격(보험수가)이 100원인 약은 도매상이 85원가량에 구입해 병원에 97원에 넘긴다. K씨는 "이 과정에서 제약사 고위 간부들이 도매상을 선정하면서 선정 대가로 도매상 수익의 일부를 가져가기도 한다"고 털어놨다.

병원 관계자와 점심식사를 마치고 잡담을 나누던 K씨가 한 통의 전화를 받고 급히 자리를 정리했다. 다른 병원에서 부품 하나를 급히 갖다 달라는 연락이었다. 이 역시 리베이트의 일종.그는 "리베이트는 현금뿐만 아니라 부품을 사다 주는 형식으로도 이뤄진다"며 "'전임자는 사다 줬는데…'라고 하면 응하지 않을 수 없다"고 푸념했다. 이런 경우 자비로 해결한다. 이 직장으로 옮겨 영업을 한 지 3년이 됐지만 지금 그의 통장 잔액은 마이너스다.

"쌍벌제?…의사들에 찔러준 현금만 수백만원"
오후 6시반 경기도에 있는 한우집에 도착했다. 이미 의사 1명과 간호사 6명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1인분에 5만5000원짜리 꽃등심을 담은 접시가 수시로 오갔다. 1시간30분 동안 먹은 음식과 술값은 101만7000원.1인당 10만원이 훌쩍 넘었다. 의사와 간호사의 1,2,3차 회식도 영업맨 담당이다.

"한도에 걸리기 때문에 의사 접대로 영수증을 청구하지 못하고 도매상(1인당 10만원으로 한도는 같지만 직원이 많아 큰 금액 결제 가능) 접대로 60만원을 청구하고 나머지는 다음달에 청구한다. " 식당 직원도 자연스레 영수증을 2개로 나눠 끊어줬다. 회식자리는 3차 노래방에서 밤 11시를 넘겨서야 끝났다. K씨는 "법인카드는 일반음식점 외엔 결제가 안돼 1차에 갔던 한우집에서 미리 결제해놓고 2,3차 회식 장소를 이용한다"고 말했다.

김우섭 기자 dut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