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大醫 키우는 의대교육
이달 1일 입학사정관 전형 원서 접수를 시발로 2012년도 입시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수험생들이 선호하는 학과는 조금씩 차이가 있지만,자연계열 최고 인기학과가 의예과와 치의예과라는 데 이견은 없을 것이다. 특히 의예과는 서울대,강원대,동국대 등 몇몇 대학을 제외하고는 거의 모두 의학전문대학원에서 학부 체제로 복귀하기로 결정함에 따라 관심이 더욱 높아지고 있다.

의예과는 대부분 수시모집으로 선발하는데 소신지원 경향이 뚜렷하기 때문에 매우 높은 경쟁률을 나타내고 있다. 게다가 최상위권 학생들이 대거 지원하므로 논술,면접,학생부,서류심사 등 학교마다 다양한 전형방법을 도입하겠다고 발표해 의대를 지망하는 수험생들의 부담은 더욱 커지고 있는 형편이다.

얼마 전 한 일간지에 미국의 의과대학들이 성적이 아니라 성격을 보고 학생을 뽑는 입시방식을 도입해 화제가 되고 있다는 보도가 나왔다. 신설된 버지니아텍 의대는 '의사가 되려면 말하는 법부터 배워라'라는 모토 아래 아홉 차례에 걸친 '다중 인터뷰'를 통해 지원자들의 인성과 자질을 평가한다. 의사에게는 환자와의 소통과 신뢰가 무엇보다 중요하기 때문이다. 스탠퍼드대,신시내티대,UCLA 등 미국의 유수한 대학들도 비슷한 방법으로 학생을 뽑는다고 한다.

우리나라 의대도 미국을 본떠 학생을 선발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그러나 전국 상위 0.5% 이내에 들어야 의예과에 들어갈 수 있는 우리나라 현실에서 주관적인 평가는 자칫 혼란과 입시 경쟁만 더욱 부추길 우려가 크다. 그보다 기본이 갖춰진 똑똑한 학생들이기에 의과대학 교육 과정을 업그레이드하면 충분히 좋은 의사를 길러낼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우리 사회에서 의사라는 직업이 갖는 의미는 참 특별하다. '암 환자의 사망 전 1년간 의료이용 행태 및 진료비 변동 양상'이라는 논문에 의하면 우리나라 암 환자들은 죽기 직전 1년 동안 평균 4회 병원을 이동하고,5회 이상 병원을 바꾸어가며 전전한 경우도 20%가 넘었다.

말기 암 환자가 두어 달마다 이 병원 저 병원으로 옮겨 다니자니 그 고통이 얼마나 심각하고 재정적인 부담은 또 얼마나 크겠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증 환자들이 '병원쇼핑'으로 내몰리는 이유는 의사와 환자,병원과 환자 간에 신뢰관계가 제대로 형성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낭비되는 건강보험 재정과 환자 각자의 의료비 지출은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을 정도다.

신뢰할 수 없는 의사에게 하나뿐인 생명을 맡기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병원과 의사들을 믿을 수 없는 집단으로 몰아가는 사회적 분위기도 문제지만 그런 의사들을 배출하는 의대 교육에도 책임이 있다. 인간을 질병으로부터 치료하려면 인간에 대한 깊은 이해가 기반이 돼야 한다는 것은 불문가지이다. 그런데 이를 위한 인성교육을 강화하거나 인문학,커뮤니케이션 등의 과목을 넣기엔 예과 2년과 본과 4년을 합해 6년의 시간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이 의대 측 이야기다.

최근 약대가 6년제로 전환하면서 의대는 7년으로 늘어나야 한다는 의견이 조심스럽게 나오고 있다. 의대 과정을 예과 2년,본과 5년의 7년 과정으로 개편해 1년은 이런 인간 이해에 대한 과목들을 가르치면 어떨까? 꼭 기간을 늘리지 않더라도 의사 국시에 프랑스의 대학 자격시험인 바칼로레아처럼 철학 논술을 포함시키는 것도 해결책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무슨 방법을 쓰든지 의과대학에서는 '신뢰받는 의사'를 만들어낼 책임이 있다. 의사를 믿을 수 있어야 환자의 삶의 질이 높아지고 따라서 사회도 편안해진다. '소의(小醫)는 질병을 고치고,중의(中醫)는 사람의 마음을 고치며,대의(大醫)는 사회의 병까지 고치는 의사다'라는 말이 있다. 소의를 넘어서 중의와 대의를 키워낼 수 있는 의대 교육을 위해 논의를 시작할 때이다.

백수경 < 인제대학원대 학장 · 객원논설위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