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푸른소금' 송강호와 사랑에 빠졌다
과거를 잊고 평범하게 살아가고 싶은 조직 폭력배 보스 두헌은 자신을 죽이기 위해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고 있는 세빈에게 말한다.

“네가 좀 행복했으면 좋겠어.”

고달팠던 인생을 짐작케 하는 그의 거친 얼굴이 스크린에 가득찬다. 건조하던 눈빛이 촉촉히 젖어든다. 그가 웃는다. "나에게 관심갖지 말라"고 하던 세빈도 이제 웃을 수 있다.

세빈은 생각한다. 처음엔 정말 별 관심 없었다고. 그저 웃긴 아저씨였는데 어느새 내 곁에서 나를 지켜준다. 이것은 필시 사랑이리라.

다음달 1일 개봉을 앞두고 있는 영화 ‘푸른소금’에서 배우 송강호의 변신은 조금 특별했다.

시사회에 참석했던 관객들의 말을 빌리자면 ‘푸른소금’은 송강호의 매력이 극대화 된, 느와르를 가장한 본격 멜로 영화다. 실제로 상대 배우 신세경은 제작발표회에서 "송강호와 사랑에 빠진 것 같다"고 깜짝 발언해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지난 25일 서울 광화문의 한 호텔에서 만난 송강호는 "허허허, 세경이가 선배에 대한 존경심을 표현하기 위해 그렇게 말한 것 같다"고 빙긋이 웃었다.

올해로 22살인 신세경은 송강호가 함께 연기한 여배우 중 가장 어리다. 그는 “‘의형제’ 때는 강동원과 거의 매일 술을 마시며 친해졌다. 세경이는 여배우다 보니 그럴 순 없고 촬영장이 해운대 부근이라 맛있는 것 사주면서 친해졌다. 애들에게 사탕 사주듯 말이다"고 설명했다.

이어 "영화 촬영이 끝나고 딱 두 달 만에 세경이로부터 문자가 왔다. '그래도 나를 잊지 않았군'이란 생각을 하며 메시지를 확인했더니 '선배님 예전에 사주신 아나고횟집 전화번호 가르쳐 주세요'라는 내용이었다"며 섭섭함을 내비치기도 했다.

송강호는 '푸른소금'을 선택한 이유로 '낯선 느낌'을 꼽았다. 그는 "'의형제'가 기획적인 느낌이 강한 영화였다면 푸른소금은 '불균질'한 영화다. 눈앞에 흥행이 보장된 작품들과 달랐다. 정형화되지 않은 느낌이 매력적인 작품이었다. '원조교제'라고 불릴 만큼 나이차이가 큰 남녀의 사랑 얘기가 재밌다"고 소개했다.

또 "전형적인 멜로의 공식을 따르는 영화가 아니었다. 두헌은 세빈에게 느끼는 사랑의 감정을 정확하고 맹목적인 표현을 사용하지 않는다. 배우로서 정서적으로 관객의 가슴에 은은히 스며들 수 있는 인물 연기가 필요로 하는 영화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선택하게 됐다"고 덧붙였다.

20여편의 필모그라피 안에는 그의 다양한 모습이 담겨 있다. 송강호는 '조폭(조직폭력배)'으로 데뷔해 형사였다가 카톨릭 신부 였다가 야구선수, 매점 주인, 카센터 주인이기도 했다. 특히 '조폭' 역할은 네 번째다.

그는 "네 번이나 조폭 연기를 하니 직급상 변화가 있었다. '초록물고기' 때 조직의 제일 막내로 입문해서 '푸른소금'에선 1인자였다" 며 " '초록물고기', '넘버3'에서는 생존을 위해 몸부림쳤다면 '우아한 세계'에선 가족을 생각했고 '푸른소금'에선 자신의 삶을 담담히 돌이켜 본다. 가을에 낙엽이 익어가듯 그렇게 깊어졌다"고 회상했다.

'푸른소금'은 등장인물의 인생에 대해 구체적으로 설명하지 않았다. 스타일리시한 영상과 단편적인 시퀀스의 조각들이 이어지면서 주연배우의 감정연기로 몰입도를 높인다. '왜' 저런 상황에 놓일 수 밖에 없었는지 알 수는 없지만 가슴으로 이해할 수 있다.

어떤 장면이든 '맛깔나게' 요리하는 송강호에게도 어려운 부분은 분명히 있었다.

"두헌이라는 인물이 이중 인격자로 보여지면 안됐다. 여자를 만났을 때 일부러 순진한 척하거나, 한 조직에서 자기 존재를 각인 시키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강한 척하면 안됐다. 사랑하는 세빈 앞에서의 두헌과 조직에서의 두헌, 두 세계를 넘나드는 부분이 제일 중요했다.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다."

송강호는 신세경에 대한 감사 인사를 잊지 않았다. 그는 "멋진 남자배우가 상대역이 아니라서 조금 미안하기도 하고, 고맙기도 하다" 면서도 "이런 감정을 연기하는 것은 이번이 마지막 영화가 될 것 같다"고 깜짝 선언했다.

눈여겨본 여배우는 또 없었을까?

송강호는 현재 영화 '하울링'에서 이나영과 촬영 중이다. "이만하면 할 만큼 한 것 같다 (하하하)" 면서 "배우 보다 새로운 감독들과 작업하고 싶다"고 도전 정신을 불태웠다.

한경닷컴 김예랑 기자 yesrang@hankyung.com /사진 양지웅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