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 조종사 500명 떠나면…항공사 '발 동동'
고용노동부가 국내 항공사들의 외국인 조종사 채용을 '불법 파견'으로 유권해석을 내림에 따라 항공사들의 조종사 수급에 비상이 걸렸다. 조종사들의 중국 등으로의 이직이 늘고 있는 상황에서 외국 조종사 채용까지 차질이 빚어질 경우 항공업계에 상당한 파장이 예상된다.

◆고용부 "불법 파견" 입장

26일 업계에 따르면 고용노동부는 대한항공 조종사 노동조합이 제기한 '대한항공의 외국인 조종사 불법 파견' 주장에 대한 조사를 마무리하고,오는 31일까지 검찰에 의견을 제출할 계획이다. 대한항공 조종사 노조는 지난해 12월31일 "회사가 법이 정한 파견 근무 가능 직군에 속하지 않는 조종사들을 외국 용역업체를 통해 불법으로 고용하고 있다"며 노동부 남부지청에 고소장을 접수했다. 노동부 측은 "지난 8개월간 검찰의 수사 지휘에 따라 다섯 차례에 걸쳐 관련 사항들을 면밀히 조사했다"며 "노동부는 파견법 위반 혐의로 대한항공에 대한 기소 의견을 제출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대한항공은 앞서 2003년에도 같은 혐의로 노조에 의해 고발당한 바 있다. 당시 검찰은 "외국에 있는 용역업체를 처벌할 수 있는 법조항이 없다"며 불기소처분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예년과 다른 결과가 나올 것이란 노동계의 전망이다. 2006년 통칭 '비정규직법 내 파견법'(파견근로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이 개정되면서 불법 파견의 주체가 된 사용사업주까지 처벌할 수 있는 법조항이 추가됐기 때문이다. 노동부 관계자는 "검찰의 결정을 예단하기는 힘들지만 2003년과 비교해 상황이 유리한 쪽으로 간 것은 사실"이라며 "불법판정을 받으면 대한항공 측은 해당 조종사들을 전원 직접고용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조종사 노조는 내국인 조종사 비율이 줄어들면 처우개선 등 사측과의 협상력이 떨어진다는 판단하에 외국인 조종사 확대를 반대해왔다. 노조 관계자는 "외국인 조종사들이 정규직으로 묶이는 것을 싫어하기 때문에 적잖은 인력이 회사를 떠나게 될 것"이라며 "그렇다고 외국인 조종사들의 수준에 맞춰 전체 정규직 조종사의 대우를 높여주면 재정적인 부담이 크게 늘어나는 게 사측의 딜레마"라고 전했다.

◆항공사들 조종사 문제 '3중고'

이번 조사 결과는 대한항공은 물론 전체 항공업계의 조종사 수급문제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국내 항공사들은 공격적으로 비행기를 들여오면서 조종사에 대한 수요가 급증하고 있지만,공급이 원활하지 않아 외국인 조종사에 크게 의존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올해 초 기준 대한항공의 전체 조종사 2550명 가운데 외국인 조종사는 396명으로 15.5%에 이른다. 전체 조종사의 10%가량이 외국인인 아시아나항공 노조 역시 이번 조사 결과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지난해를 기점으로 중국 등으로의 조종사 이직문제가 본격화하면서 항공사들의 고민은 더 깊어지고 있다. 대한항공의 한 기장은 "상반기에만 10여명의 기장이 중국 등 외국항공사로 이직했으며 올해 총 25명 정도가 나갈 것이란 게 내부 관측"이라고 말했다. 지난해까지는 대한항공의 이직자 대부분이 은퇴를 앞둔 기장들이었지만 올해는 40대 초반의 젊은 기장까지 옮겨가고 있어 이런 추세는 더 강화될 것이란 전망이다.

대한항공 측은 "조종인력 수요에 비해 내국인 인력 공급이 현저히 부족하기 때문에 외국인 조종사의 사용은 반드시 필요하다"며 "외국인 조종사들의 고용을 막는 것은 항공기 운항을 하지 말라는 것과 같다"고 말했다.

이유정 기자 yj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