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시즌이 본격화되면서 재계의 시름도 깊어지고 있다. 표를 의식한 정치권의 '대기업 때리기'가 포퓰리즘 바람을 타고 더욱 기승을 부릴 게 자명하다는 것이 기업 인사들의 한결같은 토로다.

대기업의 한 임원은 "기업들로서는 납작 엎드려 있으면서 제발 정치권의 타깃이 되지 않기를 바랄 수밖에 없다"고 했다. 그는 "MB정부 후반기 들어 대 · 중소기업 동반성장을 비롯해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대한 요구가 커졌다"며 "서울시장 선거를 시작으로 총선,대선으로 이어지는 선거정국에 접어들면서 정치권의 대기업 압박은 더욱 거세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과거부터 선거 정국이 도래하면 대기업을 겨냥한 각종 압박이 정치권의 단골 메뉴였다. 하지만 재계가 지금 느끼는 위기감은 과거보다 훨씬 높다. 나라의 안팎에서 조여오는 이중,삼중의 압박 탓이다.

유럽과 미국의 재정위기 여파로 글로벌 경기침체가 이미 예고돼 있다. 반도체 가격은 연일 급락세다. 유화,철강 등 주요 수출품 가격도 흔들리고 있다. 유럽 · 미국 등 선진시장에 이어 중국 · 인도 등 이머징마켓도 성장세가 둔화되고 있다. 성장의 엔진인 수출이 급랭할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대한상의 관계자는 "글로벌 경기침체에 대비해 상당수 대기업들이 사실상의 비상경영에 들어가 있는 상황"이라며 "기업 임원들을 만나보면 정치권이 부추기는 반기업 정서에 대한 걱정이 많다"고 말했다.

재계 관계자는 "기업들도 양극화 해소 등 사회공동체 일원으로서의 역할과 의무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면서도 "문제는 시장원리에 맞지 않는 '막가파'식 요구가 너무 많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박영렬 연세대 경영학과 교수는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등은 국내에서 수십만명의 직원을 거느리는 막강한 존재로 간주되고 있지만 나라 밖으로 나가면 글로벌 경쟁에 뒤처지면 한순간에 무너지는 나약한 존재인 것도 사실"이라고 말했다.

박 교수는 "대기업에 사회적 책임을 요구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글로벌 경쟁에서 이길 수 있도록 용기를 불어넣어주는 사회적 분위기도 함께 조성돼야 한다"고 했다.

장진모 기자 j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