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 둔화 속 물가에 발목…계속되는 '버냉키 딜레마'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3차 양적완화 여부 9월 결정
"경기 상황 더 지켜보자"…끝내 '마지막 카드' 아껴
"경기 상황 더 지켜보자"…끝내 '마지막 카드' 아껴
벤 버냉키 미 중앙은행(Fed) 의장이 3차 양적완화를 비롯한 추가 통화정책을 한마디도 시사하지 않은 것은 앞으로 경기 상황을 더 지켜보겠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시장을 실망시키긴 했지만 경기가 계속 악화될 경우에 대비,3차 양적완화를 '마지막 카드'로 남겨둔 것이다.
◆"좀 더 두고 보자"
Fed는 지난 9일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를 통해 제로(0~0.25%) 수준인 기준금리를 최소한 오는 2013년 중반까지 유지키로 했다. 달러가 이미 넘쳐나는 상황에서 당장 3차 양적완화에 나설 경우의 부작용을 우려한 것으로 시장은 받아들이고 있다. 버냉키 의장은 이와 관련,26일 와이오밍주에서 열린 세계경제정책 심포지엄 연설을 통해 "내달 FOMC 회의를 당초 하루 개최 일정에서 9월20~21일 이틀로 늘려 경기 회복 촉진을 위한 적절한 수단을 논의할 것"이라고 여지를 남겼다. 당분간은 '제로금리 지속'의 효과를 좀 더 두고 보되,양적완화가 필요할 경우 '결단'을 내릴 수도 있다는 시그널을 시장에 보낸 것이다.
양적완화 등 추가 통화정책 시행에 신중한 것은 글로벌 인플레이션이 심상치 않은 상황에서 주요국 간 환율전쟁을 더욱 부추길 수 있다는 비판을 의식한 측면이 없지 않다. 미국의 지난 7월 근원물가 상승률은 1.8%(연율 기준)로 Fed가 내부적인 관리목표로 설정한 2%에 육박했다. 제로금리를 2년 더 유지키로 한 FOMC의 표결 때도 10명의 위원 중 3명이 물가상승을 우려해 반대표를 던졌다. 중국과 브라질 등은 2차 양적완화로 풀린 자금이 투자 수익률이 높은 신흥국으로 유입돼 인플레와 자국의 통화가치 상승을 초래했다고 비판해왔다. 달러 살포는 원자재 가격을 상승시켰다는 지적도 있다.
문제는 경기 지표와 시장 상황이 악화될 경우다. 버냉키 의장은 지난 6월 "취약한 금융 부문,주택시장 침체,가계소비 위축 등의 맞바람이 강하거나 생각했던 것보다 더 지속될 수 있다"고 진단했다. 이날 연설에서도 유럽 재정위기 여파와 미국 주택경기 침체 등을 꼽았다. 미국의 7월 실업률은 9.1%였다. 지난 1분기 경제성장률은 0.4%였으며 2분기 성장률은 시장 예상치를 0.2% 이상 밑돈 1.0%에 그쳤다. Fed는 올해 미국의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2.7~2.9%로 지난 6월 제시했다. 지난 4월의 전망치 3.1~3.3%보다 크게 하향 조정했다. 내년에 3.3~3.7%로 회복할 것이라고 예상했지만,이 역시 4월의 전망치 3.5~4.2%보다 낮춰 잡았다.
◆소비 · 투자 회복이 관건
관건은 소비와 투자다. 제로금리든 양적완화든 기업들이 투자를 늘리고,소비자들이 지출을 늘리는 민간 수요가 주도해야 경기가 회복된다. 버냉키 의장 아래서 Fed 부의장을 지낸 도널드 콘 전 브루킹스연구소 수석 연구원은 "미국 경제의 70%를 차지하는 소비자들이 적극 지출하지 않는 것이 가장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톰슨로이터와 미시간대가 공동으로 발표하는 8월 미국 소비자 심리지수 확정치는 55.7로 전월의 65.7에서 하락했다. 2008년 11월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이다.
AP통신과 여론조사기관인 GFK가 최근 공동 여론조사한 결과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경제 문제에 대처하는 방식을 지지한 비율은 36%에 불과했다. 두 기관이 지금까지 조사한 것 중 최저치였다. 정치권은 당파적인 이해관계에 매몰돼 리더십 부재를 노출시켰다. 연방정부의 부채한도 증액 협상을 벌이면서 국가 디폴트(채무 불이행)를 볼모로 삼았다.
기업과 소비자들은 불안할 수밖에 없다. 기업들이 내부에 쌓아둔 현금은 2조달러를 넘는 것으로 추정된다. 초(超)저금리에도 미국인들의 은행예금은 10조달러에 육박했다. CNN머니는 미 연방예금보험공사(FDIC) 보증을 받는 은행에 예치된 예금이 올 상반기에 3043억달러 증가,총 9조8000억달러를 기록했다고 전문 조사기관 마켓 레이트 인사이트 집계를 인용해 보도했다.
워싱턴=김홍열 특파원 come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