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의 순환은 어김없다. 물폭탄으로 여름을 보낸 뒤 아침저녁이면 선선하다 싶자 어느새 가을 별미가 입맛을 돋운다. 전어가 대표선수다. '봄 도다리,가을 전어'라는 말을 굳이 꺼낼 것도 없다. 도시의 횟집이나 포장마차에서는 벌써부터 전어 굽는 냄새가 식객을 유혹한다. 집 나간 며느리도 돌아오게 한다는 그 냄새,거부하기 힘들다. 올해는 8월에 잡아올리는 여름 전어 시즌도 예년보다 빨리 시작됐다. 전어를 만나러 떠났다.

◆광양만에선 밤새 전어잡이 한창

토요일 새벽 4시.섬진강이 바다와 만나는 전남 광양시 진월면 망덕포구에서 배를 탔다. 어둠을 헤치고 육지와 배알도,광양국가산업단지가 있는 금호도 사이의 좁고 긴 바닷길을 따라 20분쯤 달렸을까. 광양만으로 들어서자 멀리서 반짝이는 불빛들이 하나둘씩 눈에 들어온다. 전어잡이 배다. 키를 잡은 황용억 광양전어축제위원장이 속도를 낮추고 전어잡는 배에 접근해 물어본다. "오늘,어때요?" "아직이요. 며칠 전보다 신통찮네요. "

황 위원장은 "전어는 조수(潮水)가 가장 낮은 조금이 임박할 때 잘 잡히는데 오늘은 너물(음력 13,28일)인 데다 아직 그물을 올릴 시간이 되지 않아서 그럴 것"이라며 "좀 기다려보자"고 했다. 어둠이 걷힐 무렵 그물을 한창 걷어올리기 시작하면 더 많은 전어를 볼 수 있을 것이라는 얘기였다. 기다리는 사이,배낭을 베개 삼아 배에 누워 하늘을 본다. 별이 총총하다.

이윽고 5시 무렵.전어 배들이 그물을 올리느라 분주하다. 전어잡이 배에서는 대개 2명이 작업한다. 혼자서는 힘들고 사람을 고용하면 인건비가 부담스러워 부부가 조업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전어는 대개 수심 30m 이내에서 잡히는데 수면 가까이 올라오는 심야에는 그물을 얕게 띄우는 '뜬망'으로 잡다가 동틀 무렵 전어가 바닥으로 내려가면 미리 쳐 놓았던 그물을 걷어올린다.

부인과 함께 조업 중이던 망덕포구 어촌계장 이용호 씨(61)는 "보통 하루에 40~50㎏은 잡는데 오늘은 20㎏밖에 못 잡았다"며 "그래도 벌이는 괜찮은 편"이라고 했다. 예전에는 하루 200㎏을 잡는 날도 흔했고,1주일 전만 해도 하루 140~150㎏을 잡기도 했다는 것.그는 배와 장비를 포함해 1억원 정도를 투자했는데 다른 일을 해서 이만한 수익을 어떻게 올리겠느냐고 말했다.

오전 7시가 가까워지자 전어배들이 일제히 그물을 접고 철수한다. 전어를 실은 배들은 쾌속선처럼 전속력으로 질주한다. 전어를 산 채로 넘기기 위해서다. 망덕포구에선 매일 20여척이 전어잡이에 나선다. 7월 말부터 11월 말까지,광양만 일대는 물론 섬진강 하구를 거슬러 올라가 악양 인근에서까지 전어를 잡는다고 한다.

◆전어에도 '명품'이 있다(?)

전어는 남해와 서해에서 두루 잘 잡힌다. 어획량이 많고 비싸지 않아 서민들이 즐기기에 딱 좋다. 하지만 광양 사람들은 "전어라고 똑같지는 않다"고 말한다. 이씨는 "길고 날씬한 다른 지역의 전어와 달리 섬진강의 민물과 바닷물이 교차하는 광양만에서 잡은 전어는 뻘 속의 풍부한 먹이를 먹고 자라 살이 통통하고 기름기가 많아 맛과 향이 확연히 다르다"고 설명한다. 그물에서 막 건져올린 전어를 코끝에 가까이 대면 수박향이 난다고도 했다.

집 나간 며느리를 돌아오게 한 전어도 '광양 출신'이라고 주장한다. 가을이 깊어갈수록 전어의 기름기가 많아져 한 집에서 전어를 구우면 온 동네에 전어 냄새가 퍼졌다는 것.정약전은 《자산어보》에서 "기름이 많고 달콤하다"고 했고,서유구는 《임원경제지》에서 "기름이 많고 맛이 좋아 상인들이 염장하여 서울에서 파는데,귀한 사람이나 천한 사람이나 모두 좋아해 사는 이가 돈을 논하지 않아 전어(錢魚)라고 했다"고 적었다.

광양=서화동 기자 fire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