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심이 됐던 잭슨홀 미팅이 끝났다. 이후에 불행한 일이 될지,다행한 일이 될지는 모르지만 벤 버냉키 미 중앙은행(Fed) 의장은 3차 양적완화 정책에 대해 어떤 언급도 하지 않았다.

두 가지 해석이 가능하다. 하나는 외형상 우려와 달리 미국 경제가 여전히 괜찮다는 판단이다. 최소한 버냉키 입장에서는 그렇다는 뜻이다. 다른 하나는 현 시점에서 3차 양적완화 정책을 추진하더라도 기대하는 효과보다 인플레이션 등과 같은 부작용이 더 우려돼 '노 코멘트'로 일관한 것이 아닌가 하는 시각이다. 이 같은 시각도 만만치 않다.

미국 경제에 대한 첫 번째 판단에서 3차 양적완화 정책을 언급하지 않았다면 다행한 일이다. 하지만 미국 경제는 지표상으로는 분명히 부진하다. 잭슨홀 미팅이 열리는 그 시점에 발표됐던 2분기 성장률은 1%로,잠재수준을 감안하면 -2%포인트의 '디플레 갭'이 발생한 것이 이 같은 사실을 뒷받침해 준다.

시장도 혼란스럽기는 마찬가지다. 전혀 예측할 수 없는 '팻 테일(fat-tail) 리스크 장세'가 증시뿐만 아니라 금을 비롯한 상품시장에서까지 광범위하게 나타나고 있다. 팻 테일 리스크란 정규분포에서 유래된 것으로 꼬리가 너무 살쪄 두터워지면 평균에 집중될 확률이 그만큼 낮아지고 이를 통해 예측하면 잘 맞지 않는다는 뜻의 용어다.

미국 경제의 앞날을 보는 시각도 다양하다. 낙관론은 회복세가 빠를 것이라는 '소프트 패치'와 경제주체들이 느끼지 못할 정도로 완만할 것이라는 '라지 패치'로 나뉜다. 비관론도 저점이 두 개 형성될 것이라는 '더블 딥'에 이어 누리엘 루비니 뉴욕대 교수가 한번 더 깊은 골이 찾아올 것이라는 '트리플 딥'을 경고했다.

인플레이션과 관련해 경기침체 하에 물가가 올라갈 것이라는 '스태그플레이션' 우려가 나온 지는 비교적 오래됐다. 최근 들어서는 스태그플레이션이 장기화될 것이라는 '슬럼플레이션' 우려까지 나올 정도다. 이런 상황이 온다면 미국 경제는 1930년대 겪었던 대공황을 다시 한번 겪을 수도 있다.

지난 3년간 쓸 수 있는 부양수단을 다 동원하고도 미국 경제가 부진하고 향후 전망도 불투명한 것은 금융과 실물 간의 연계가 복원되지 않는 것이 가장 큰 요인으로 지적되고 있다. 위기 이전 미국 국민들의 과소비형 구조와 기업인들의 긍정적 사고대로라면 금리를 '제로(0)'로 낮추고 돈을 많이 풀면 소비와 투자로 연결돼 경기가 회복될 수 있었다.

버냉키 의장도 이 점을 인식하고 기대했다. 하지만 미국 중심의 시대가 도래된 이후 처음으로 위기를 맞으면서 미국 국민과 기업인들의 태도는 바뀌었다. 각종 패널자료를 보면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을 크게 느끼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 때문에 국민들은 소비보다 저축을 늘리는 디레버리지를,기업인들은 투자보다 현금 확보에 열을 올리고 있다.

특정 국가에서 이런 현상이 나타나면 '이분법 경제(dichotomized economy)'라 부른다. 금융과 실물이 따로 논다는 의미다. 이 구조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상황에서 3차 양적완화 정책을 섣불리 추진해 돈을 풀면 미국 경제 전망 가운데 최악의 시나리오인 스태그플레이션이나 이 국면이 장기화되는 슬럼플레이션에 빠질 가능성이 그만큼 높아진다.

이 때문에 버냉키 의장의 머릿속에는 3차 양적완화 정책이 떠난 지 오래됐다는 시각도 많다. 올 5월 Fed 회의에서 더 이상의 양적완화 정책 추진은 없다고 못 박은 적이 있다. 벌써부터 종전과 다른 창의적이고 획기적인 대책을 구상하고 있다는 얘기가 Fed 주변에서 흘러나온다. 새로 구상 중인 대책의 기본방향은 금융부문에만 머물고 있는 돈을 실물로 들어갈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정책의 성격상 오바마 정부의 협조가 절대적으로 필요하겠지만 향후 경기 회복의 관건이 될 소비를 촉진시키기 위해 '쿠폰제'를 도입할 것이라는 소식도 들린다. 소비 쿠폰제란 100달러 상품을 구입하면 10달러를 더 살 수 있는 쿠폰을 주는 일종의 소비 장려책이다. 또 기업인들이 미래에 닥칠 불확실성에 보다 전향적으로 대응할 수 있도록 투자하면 세금을 감면해주는 제도 등을 조만간 발표할 것으로 월가는 보고 있다.

투자자를 비롯한 경제주체들이 미국 경제 및 증시 앞날과 관련해 예의주시해야 할 것은 바로 이 대목이다. 금융과 실물 간의 연계성이 언제 복원돼 소비와 투자가 지속 가능하게 늘어나느냐가 3차 양적완화 정책 추진보다 더 중요하다. 어떤 대책보다 정책 당국자와 정책 수용층 간의 소통이 절대적으로 요구되는 만큼 시간이 걸리는 문제다.

이제부터 너무 성급한 기대를 갖기보다는 어떤 국가든 가장 기본적이고 본질적인 과제인 금융과 실물 간의 연계가 강화되느냐 여부를 지켜보면서 신중하게 미국경기와 월가 앞날을 바라보는 자세가 요구되는 시점이다.

한상춘 객원논설위원 sch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