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채용 백지화·제약협회 탈퇴 움직임도
정부의 '8 · 12 약가 인하' 발표 이후 국내 제약사들이 잇따라 비상경영에 돌입하고 있다. 내년부터 제약사들이 시중에 판매하고 있는 약값이 반토막 나면서 매출과 이익이 크게 줄어들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30일 업계에 따르면 상위 제약사인 L사는 최근 최고경영자(CEO) 주재 임원회의를 열고 비상경영을 선언했다. 이 회사는 내년도 매출이 최대 750억원가량 감소할 것으로 예상되면서 모든 부서에 비용 절감 방안을 마련할 것을 지시했다.
판교에 위치한 중견 제약사 S사도 비상경영 체제로 전환하면서 판매관리비 등 전사적인 비용 삭감에 들어갔다.
S사 관계자는 "내년부터 약값이 대폭 인하되면 현재 400여개에 달하는 국내 제약사 중 절반가량은 문을 닫거나 인수 · 합병(M&A) 시장에 매물로 나올 가능성이 크다"며 "상위 제약사라고 해도 워낙 매출액 감소폭이 커서 당분간 흑자를 내는 제약회사는 나오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경영위기에 직면한 제약사들은 신규 채용 계획도 대부분 백지화하고 있다. 국내 상위 10위권(매출 기준) 제약사들은 올해 1500명 규모의 신규 인력을 채용했지만 내년에는 신규 채용이 어려울 것으로 보고 있다.
하반기 공채를 진행하고 있는 J사 관계자는 "회사가 긴축경영에 돌입하면서 최소 인력만 뽑을 방침"이라며 "내년엔 신규 채용이 어려울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다른 중견 제약사 관계자는 "신규 채용은 차치하고 당장 인력 구조조정에 나서야 할 급박한 상황에 몰리고 있다"고 전했다.
일부 제약사는 일찌감치 자체적인 구조조정을 진행하고 있다. 내년부터 대대적인 약가 인하가 시행되면 매출 손실이 큰 의약품을 보유한 업체들은 해당 품목을 관리하는 영업사원을 최소 30%가량 줄여야 손익을 맞출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제약사의 한 영업사원은 "수익성 낮은 품목은 도매업체에 총판 형태로 영업망을 넘길 가능성이 높은데,이는 곧 영업인력 감축으로 이어질 것 아니냐"고 걱정했다. 외환위기 때 유행했던 '삼팔선(38세가 마지노선)''사오정(40~50대 정년퇴직)' 바람이 내년 초 제약업계에 불어닥칠 가능성이 크다는 위기의식이 높아지고 있다.
정부의 강도 높은 약가 인하 단행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한 제약협회에 대한 원성도 자자하다. 일부 상위 제약사들 사이에선 제약협회를 탈퇴해 매출 기준 상위 30개 내지 50개사가 별도로 '전국제약인연합회(가칭)'를 구성,정부와 맞상대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이준혁 기자 rainbo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