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안함 사건 발발 직후인 2009년 3월27일 새벽.휴대폰 부품업체 크루셜텍(대표 안건준)에 스마트폰 제조사 림으로부터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한국에서 전쟁이 일어나면 부품 수급에 차질이 빚어질 수 있으니 다른 나라에도 공장을 세워달라는 내용이었다. 국내에만 생산 기반을 둔 크루셜텍은 여러 가능성을 검토한 끝에 2개월 만에 베트남에 공장 건설을 결정했다. 지난 6월 이 공장을 준공했다.

통상 삼성전자와 림 등 완성품(세트) 업체들은 한 종류의 부품을 두 곳 이상의 부품업체들로부터 조달하는 '구매 다원화' 정책을 쓴다.

문제는 크루셜텍이 세계 유일의 OTP(옵티컬트랙패드) 생산업체라는 점이다. 림 입장에선 다른 기업으로 조달 창구를 이원화하기 어렵기 때문에 크루셜텍에 '지역' 다원화를 요구한 것이다.

이 회사는 2005년 세계 최초로 개발한 휴대폰 입력장치 OTP를 앞세워 2009년 622억원, 2010년 2080억원을 달성한 데 이어 올해엔 3500억원을 목표로 하고 있다.

구매 다원화는 '양면의 칼' 같다. 대기업 입장에선 부품 수급 안정성 및 단가 인하를 꾀할 수 있다. 반면 중소기업으로선 기피의 대상이다. 경쟁사에 물량을 빼앗기면서 외형과 수익성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공산이 크기 때문이다.

크루셜텍이 경쟁사의 출현을 바라고 있는 게 뉴스가 되는 건 이 때문이다. 이 회사는 애널리스트 대상 기업설명회(IR)에서 회사의 약점을 묻는 질문에 "시장을 독점하는 것"이라고 답한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안 대표는 "먹을거리는 나눠먹는 게 뒷날을 위해서 좋다"고 말한다. 작은 시장을 독점하는 것보다 선의의 경쟁을 통해 시장 저변을 확대하고 더 큰 파이를 여럿이 공유하는 게 낫다는 얘기다.

김병근 기자 bk11@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