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의 수사가 옥죄어오자 곽노현 서울시 교육감은 포기한 듯 '2억원의 진실'을 털어놨다. 곽 교육감은 지난 28일 기자회견을 통해 "(박명기 서울교대 교수가) 경제적으로 궁박한 상태이며 자살까지도 생각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모른 척 할 수 없었다"며 '통큰 선의'의 배경을 설명했다. 박 교수는 지난해 서울시 교육감 선거 때 유력한 진보진영 후보였다.

선뜻 2억원을 건넨 곽 교육감의 공직자 재산신고 당시 전 재산은 4억여원이었다. 그의 설명대로라면 절친도 아닌 개인의 생활고를 가만히 보고 있을 수 없어 재산의 절반을 아무런 대가없이 뚝 떼어준 셈이다. 이를 두고 초등학교 교사인 한모씨(56)는 "웃는 소가 있다면 그의 주장에 파안대소했을 것"이라고 허탈해했다.

곽 교육감은 이어 "합법성만 강조하고 인정을 무시하면 몰인정한 사회가 된다"고 자신의 선의를 강변했다.

고려대의 L 교수는 "그렇다면 그동안 뇌물수수 사건에 연루돼 처벌받은 수많은 공직자와 기업인,개인들은 범법자가 아닌 '몰인정 사회의 희생양'이라는 논리"라며 "도덕수준이 의심스럽다"고 말했다.

이날 곽 교육감의 변명에 시민들이 또 한번 분노를 넘어 역겨움마저 느낀 건 청렴성을 강조했던 그에 대한 배신감 외에도 '사회 지도층'의 '변명 데자뷰(旣視感)' 효과도 작용했다. 최근 잇따라 비리사건이 터져도 관련자들의 자기반성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수십차례 강원랜드 카지노를 드나들다 감사원에 적발된 고위 공무원 A씨는 "어디 가서 뇌물을 받을 수도 없고 생활비 버는 수단으로 카지노를 택했다"고 해명했다. 또 다른 공무원 B씨는 "카지노 자체가 불법도 아니고 국가가 운영하는 곳(강원랜드)에 갔는데 뭐가 문제냐"고 적반하장격으로 반발했다. 지난 6월 리베이트 쌍벌죄로 기소된 의사를 대변한 대한의사협회는 "다른 상거래에선 인정되는데 왜 우리만 문제삼나"며 형평성 문제를 제기했다.

시대별로 삶의 가치와 윤리의 척도는 변하기도 한다. 더구나 경제가 '최고의 관심사'인 요즘엔 다른 가치들이 뒤로 밀릴 때도 적지 않다. 하지만 법이 예외를 둬선 안 된다. 도덕불감증에 걸린 오피니언 리더들의 치졸한 자기변명을 듣고 있자면 죄도 사람도 다 미워진다.

김동민 지식사회부 기자 gmkdm@hankyung.com